[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독일 총리 메르켈의 ‘아름다운 퇴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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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독일을 이끌었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67·사진) 스스로 물러납니다. 기독민주당 소속인 메르켈은 16년 동안 네 차례 연임했을 정도로 리더십을 인정받았습니다.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내각의 수반인 총리가 이렇게 장기 집권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재임 기간 메르켈은 4명의 미국 대통령, 3명의 프랑스 대통령, 4명의 영국 총리와 마주했습니다. 메르켈은 독일 통일을 이뤄낸 헬무트 콜 전 총리와 함께 최장수 총리로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장기 집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르켈은 최근까지 독일 국민들로부터 70% 넘는 지지를 받았습니다. 전직 대통령 대부분이 불행한 퇴임을 맞은 우리 정치문화와 비교하면 특별해 보입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메르켈은 콜 당시 총리에게 발탁돼 여성청소년부 장관(1991년), 환경부 장관(1994년) 등을 역임했습니다. 2000년 중도우파 기독민주당 대표에 오른 뒤 2005년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하며 총리가 됐습니다. 메르켈은 동독 출신 여성 총리로서 숱한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10년 연속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이고 포용적인 리더십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독일 내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과 세계의 지도자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국내 정치에서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좌우 이념적 구분 없이 정치 지평을 넓혔고, 대외적으로는 EU의 결속을 다지는 한편 미국 중국 등과의 관계에서 유연하게 대처했습니다.

메르켈은 2010년 모병제 전환, 2014년 연금수령 연령 하향, 2015년 최저임금 법제화 등 난제들을 절묘하게 풀어냈습니다.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판을 정책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메르켈의 적극성과 실천력, 인내심, 경청 능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습니다.

메르켈은 ‘무티(엄마) 리더십’으로 유명합니다. 정치적 노선과 관계없이 포용적 리더십을 보여줬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과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했다고 합니다. 인내와 끈기를 바탕으로 타협에 이르는 민주적 기본원칙을 고수한 덕에 메르켈은 EU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스발 유럽 경제위기, 브렉시트 협상, 시리아 난민 문제, 코로나 대유행 등 온갖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도 눈에 띕니다. 그는 총리관저가 아닌 작은 아파트에서 살며 남편과 직접 먹을 채소를 기르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고 합니다. 그는 16년간 스캔들이나 부패 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습니다. 국민들이 퇴임을 아쉬워하는 지도자,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부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당리당략에 따라 서로 배척하고 싸우는 정치가 아닌 타협할 줄 아는 성숙한 정치문화를 기대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독일 총리#메르켈#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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