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상준]與 ‘박원순 방지법’처리가 사과의 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상준·법조팀
박상준·법조팀
“구체적인 사과의 방법으로 민주당에서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 A 씨는 17일 기자회견에 나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저의 회복을 위해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앞서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 서울중앙지법 조성필 부장판사는 올 1월 A 씨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직원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도 195일간의 조사 후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한 발언과 행동은 ‘성희롱’이라고 결론 내렸다.

숙제를 마치지 못한 건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은 A 씨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며 애써 피해 사실을 축소했다. 이후 ‘선출직 공직자가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잃으면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까지 바꿔 서울시장 후보를 냈다.

민주당이 A 씨에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과에는 재발방지를 위한 입법 활동이 포함된다. 야당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성폭력을 저지른 경우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해 전문가들이 진상을 조사하는 ‘성범죄조사위원회법’을 발의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릴 경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법도 발의됐다.

고위공직자인 피의자가 사망해도 검찰이 공소기각 결정을 하지 않고 수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한 법안도 나왔다.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어 법체계상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번 박 전 시장 사건처럼 피해자가 사법 절차를 통해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 법안들은 국회 의석수의 58%인 174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통과되기 어렵다. A 씨는 “권력 불균형 속에서 약자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폭력 사건을 거치면서도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던 민주당엔 지금이 A 씨에게 준 상처를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박원순 방지법#사과의 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