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부터 2610번까지… 입국 감염자 찾아낸 검역 ‘매의 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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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코로나 1년]코로나 검역 1년 공항-항만 현장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의 1차 검역대에서 검역관들이 입국자들이 작성한 건강 상태 질문서를 바탕으로 체류 국가 등을 점검하고 있다.
 지난해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일선 검역 현장의 방역 전선은 더욱 넓어지고 업무
 강도는 높아졌다. 인천국제공항검역소 제공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의 1차 검역대에서 검역관들이 입국자들이 작성한 건강 상태 질문서를 바탕으로 체류 국가 등을 점검하고 있다. 지난해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일선 검역 현장의 방역 전선은 더욱 넓어지고 업무 강도는 높아졌다. 인천국제공항검역소 제공
“T1(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검역팀, 파리에서 입국 중인 공연팀 전원 확인하세요.”

지난해 10월 인천공항 1터미널 검역팀으로 다급한 무전이 전해졌다. 2터미널 검역소에서 보낸 긴급지침이었다. 2터미널로 입국하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팀 관계자 5명에게서 발열 증상이 포착됐는데, 다른 비행기를 탄 일부 팀원이 1터미널로 입국 중인 것인 것이다.

공연팀은 곧장 ‘타깃검역’으로 지정됐다. 원래 체온 37.3도 이상 입국자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지만 타깃검역이 되면 전원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 결과 1, 2터미널로 나눠 입국하던 공연팀 31명 중 확진자가 14명 나왔다. 현장의 정확한 판단과 발 빠른 조치가 없었다면 국내 지역사회 유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김상희 국립인천공항검역소장은 “검역관 한 명 한 명이 유기적인 역할을 하며 ‘원 팀’으로 움직인 결과”라고 말했다.

● “코로나 1년, 검역 최전선은 더 넓고 치열해졌다”

2019년 12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 발생이 보고 된 뒤 인천공항에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확진자가 쏟아지는 중국발 입국자를 대상으로 검역이 크게 강화됐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1월 20일 중국 우한(武漢)에서 온 한 여성(36)이 공항 검역 과정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국내 ‘1번 환자’다. 지난해 1월부터 이달 17일까지 공항과 항만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내·외국인은 약 834만1000명. 바이러스 유입의 최전선을 지키는 검역당국은 이 중 약 17만 명의 유증상자를 검사해 2610명의 확진자(양성률 1.5%)를 찾아냈다. 공항, 항만에서부터 의심환자를 찾아내고, 음성이 확인돼야 지역사회로 내보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방역 시스템이 가동된 결과다.

코로나19 발생 1년이 지났지만 검역 현장은 여전히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발생한 변이 바이러스 여파로 검역 전선은 더 넓어지고, 상황은 더 치열해졌다. 방역당국은 변이 바이러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영국, 남아공발 입국자를 미리 찾아내고 있다. 지난해 구축한 ‘올라운드 입국관리시스템’을 통해서다. 예컨대 ‘런던-파리-인천’, ‘런던-두바이-인천’ 등 연결 항공권을 이용한 사람들도 명단을 사전 확보해 1차 검역 단계에서 걸러낸다. 전국 13개 검역소와 방역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청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김금찬 질병청 검역정책과장은 “마치 적군의 주요 기지를 폭격기로 정밀 타격하듯 선제적으로 유증상자를 골라내 감염 확산 위험군을 표적 차단하는 전략이다. 세계적으로 이 같은 체계를 갖춘 곳이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출발해 중간 경유지에서 수일간 머물거나, 항공권을 ‘런던-파리, 파리-인천’ 등으로 분리 발권한 입국자는 이 시스템으로도 찾기가 어렵다. 입국자가 건강상태 질문서를 제출할 때 자발적으로 영국 체류사실을 밝히길 기대해야 한다. 이런 검역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현장 검역관은 매의 눈을 뜨고 입국자를 살핀다. 입국자가 검역관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는지, 어두운 표정을 짓진 않는지, 체류국가를 묻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는지 등을 유심히 확인한다. 김정민 인천공항검역소 주무관은 “유학생처럼 보이는 20대 입국자를 주의해서 본다. 기습적인 질문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지 등을 세심히 살핀다”고 설명했다.

방역당국은 변이 바이러스에 대비해 2중, 3중의 방역망을 촘촘히 짰다. 항공은 8일부터, 선박은 15일부터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에게 출발일 기준 72시간 이내에 발급된 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받고 있다. 정확도가 낮은 신속항원검사 결과는 인정하지 않고, 유전자증폭(PCR) 검사만 인정한다. 음성확인서를 지참해도 국내 장기 체류 예정자는 자가 격리 전 검사를 한 차례 더 받아야 한다. 물론 자가 격리 해제 전에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인천공항검역소가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1차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 증세가 중증으로 악화되는 환자가 종종 생기면 응급의료기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 입국한 50대 남성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공항 내 병상으로 옮겨진 뒤 30분 만에 산소 포화도가 73%(90% 이하는 저산소증)까지 떨어졌다. ‘인천공항 내 첫 사망자’ 발생이 우려되는 순간이었다. 양진선 인천공항검역소 검역1과장은 “확진자 여부가 4시간 후에나 나올 예정이라 병원에 보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천신만고 끝에 가천대길병원에 확진자 병실을 확보하면서 20분 만에 이송해 치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검역현장

공항 검역 과정에서 유증상자는 격리실에서 1차 검사를 받고 결과까지 받아보는데 최소 6시간이 걸린다. 경우에 따라 1박 2일간 머물러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동행한 가족 중에서 1명이라도 유증상자가 나오면, 가족 모두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역관들은 “내가 왜 검사를 받냐” “빨리 나가게 해 달라”는 항의와 불만을 반복해서 듣는다.

입국자들의 민원 해결도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오다보니 번역기를 동원할 때가 많다. 군 통역병이 지원 중이지만, 모든 대기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김 주무관은 “아기가 검사를 받게 되면 외국인 엄마들은 분유를 사 달라, 한식 말고 다른 음식을 달라는 등 다양한 부탁을 한다”며 “스페인어 등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쓴 감사 문자를 받을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수차례 확진자와 마주하지만 검역관들은 감염 우려를 느낄 새가 없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처음엔 겁도 나고 두려웠지만, 검역과정에선 1년 동안 검역관이 단 한 명도 확진되지 않으면서 보호장구만 잘 착용하면 감염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 검역의 또 다른 전선 ‘항만’


공항뿐 아니라 항만도 검역 현장의 한 축이다. 전국 검역소가 잡아낸 해외 유입환자(2610명)의 9.4%인 245명을 항만에서 포착했다. 특히 해외 선원들이 확진이 이어졌던 부산항은 최대 격전지다.

국립부산검역소의 ‘검역 레이더망’은 선박이 항구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동된다. 선원들이 언제 어느 나라에서 출발했는지, 고기잡이를 하던 중 교체된 선원은 없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제출받고 살핀다. 선박이 들어오면 검역관들은 방호복을 입고 배에 올라타 증상 유무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검체를 채취한다. 의심환자가 한 명이라도 의심되면 나머지 선원들의 국내 입국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방호복을 입고 배에 오르기 때문에 검역을 마치면 검역관들이 땀범벅이 되곤 한다. 김인기 국립부산검역소 소장은 “배 검역 전 명단을 보고 ‘이 사람은 뭔가 의심스럽다’ 싶으면 실제로 확진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며 “수많은 검역을 통해 검역관들이 도사가 다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질병관리청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독립해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것이 검역 시스템 강화의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한다. 찰나를 다투는 검역 현장에서 상급기관에 보고하고 지침을 받는 시간이 단축되면서 대응속도도 빨라진 것이다.

질병청은 특정 국가 확진자가 2, 3명 공항으로 들어오면, 해당 국가를 타깃검역 대상으로 선정한다. 예컨대 미국 A지역에 있는 공장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미국발 입국자에게 “A지역에서 오신 분”이라는 추가 질문을 하도록 지침을 바꿔 대응한다. 영국발 변이바이러스 발생 후 유증상자 분류 기준을 기존 37.5도에서 37.3도로 낮춘 것도 현장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김 과장은 “과거에는 급박한 순간이 오면 먼저 상부에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지만, 이젠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김소영·김성규 기자
#입국#감염자#매의눈#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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