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출금’ 수사검사는 파이팅 넘치는 아마추어 복서 출신

이태훈 기자 입력 2021-01-14 11:27수정 2021-01-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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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사’에 이어 정권말 대형 악재 되나
김학의 前법무차관.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긴급 출국금지 사건에 법무부와 검찰 고위 간부들에 이어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연루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이번 사건이 검찰의 원전 수사와 더불어 임기 말 문재인 정부에 대형 악재가 될 조짐이 커지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2019년 당시 김학의 사건 재수사를 검찰개혁에 활용하려던 문재인 정부에 되레 부담으로 작용해 레임덕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건의 윤곽은 2019년 3월 당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 파견돼 있던 이규원 검사가 법적 요건에 맞지 않는 긴급 출금을 실행했다는 것이다. 출금 요건 등 법을 잘 아는 이 검사가 단독으로 이런 일을 했는지, 이 검사에게 무리한 긴급 출금을 지시 또는 종용한 법무부와 검찰의 윗선이 있는지, 법무검찰을 넘어 청와대에서도 개입한 것이 있는지 등 핵심 의혹들은 이제 막 본격 수사에 들어간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검찰 안팎에서는 상명하복이 제도화돼 있는 검찰의 조직 문화에서 실무자에 불과한 젊은 이 검사가 불법의 여지가 농후해 나중에 본인이 형사 처벌까지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일을 혼자 결정해서 감행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문제의 긴급 출금이 있었던 2019년 3월 23일 직후 법조계에는 이 검사가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에 저항했다는 말이 나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검사는 자신에게 무리한 지시를 한 상관에게 “나한테 권한이 없는데 왜 이러시냐”며 지시 이행을 거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검사는 당시 수사권이 없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인 데다 ‘수사기관의 장’도 아니어서 자신의 명의로 긴급 출금을 요청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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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2일 늦은 밤 김 전 차관이 인천공항에서 태국 출국을 위한 탑승 수속을 마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김 전 차관이 피의자가 아니어서 긴급 출금 요건이 안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출국 저지를 위해 법무부와 검찰 윗선에서 이 검사에게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긴급 출금 요청서를 만들어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로 보내도록 압박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정황이다.

당시 법무부의 출입국 관련 지휘라인은 박상기 장관, 김오수 차관, 차규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었다. 장관 정책보좌관이었던 현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은 긴급 출금 직후 사후 수습을 위해 법무부 출입국 관련 부서에 대응법을 물어본 정황이 공개됐다. 검찰에서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이 검사가 법무부에 긴급 출금 요청 사후 승인을 요청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내사번호인 ‘서울동부지검 내사 1호 사건’을 기재한 것과 관련해 출금 다음날 서울동부지검장에게 “검사장이 내사번호를 추인한 것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불법 긴급 출국금지 의혹 사건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닮았다. 두 사건 모두 주무부서나 기관에서 실무를 처리했지만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 없이 실행되기 어려운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은 사소한 일도 상급자의 결정을 받아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인데 하물며 불법을 넘나드는 중대 사안을 윗선의 지시 없이 하급자 재량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이번 사건에 등장한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은 이규원 검사와 사법연수원 36기(사법시험 46회) 동기생이며 연수원 수료 직후 같은 법무법인에서 2년간 활동한 인연이 있다. 또 2019년 3월 18일 문 대통령이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경찰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엄명을 내리기 나흘 전인 3월 14일 청와대에서 근무한 윤규근 총경이 민갑룡 경찰청장의 경찰 불기소를 비판한 국회 답변 기사를 이 비서관에게 보내며 “이 정도면 됐나요”라고 하자 이 당시 선임행정관은 “더 세게 했어야 했는데”, “검찰과 대립하는 구도를 진작에 만들었어야 하는데”라고 답했다.

불법 긴급 출금 사건도 대전지검의 원전 수사팀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비리 수사에 주저함이 없는 라인으로 구성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휘로 이번 수사를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13일 넘겨받은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은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으로 있으면서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에 대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감찰 무마 의혹 수사를 벌여 유 전 국장을 구속 기소하고 조국 전 민정수석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부장검사가 2019년 ‘김학의 성폭행 및 뇌물수수 의혹 특별수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은 윤 총장이 불법 긴급 출금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할 적임자로 보고 수사를 맡긴 계기가 됐다.

1971년 서울 출생인 이 부장검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과감히 전개해 유죄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수사 능력과 강단이 있는 검사로 평가받는다. 온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과거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뛴 적도 있을 만큼 투지가 강하다는 평이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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