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고의 없었다'는 주범…1심 징역 30년→항소심서 무기징역
항소심 재판부 "구체적인 행위 살펴보면 살인죄 충분히 인정"
원룸에 함께 살던 지적장애 여성을 폭행해 살해하고,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한 일당 주범들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인간으로서 인격체로서 가장 기본적인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질책하며, 수감 시간 동안 깊이 반성하고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어달라고 했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성주)는 살인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28)씨와 B(30)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30년과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 무기징역과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A씨에 대한 신상정보를 10년간 공개·고지하고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10년 취업제한 명령과 함께 10년간 위치추적 장치 부착을 명했다. B씨에게도 10년간 위치추적 장치 부착 명령이 내려졌다.
이와 함께 살인방조 및 사체유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C(35·여)씨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A씨와 B씨는 지난해 8월 18일 오후 전북 익산의 한 원룸에서 지적장애인 D(20·여)씨를 주먹과 발로 부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숨진 피해자를 익산에서 134㎞가량 떨어진 경남 거창군 한 야산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살인, 성매매교사, 특수상해, 감금, 사체유기 등 무려 15가지나 됐다. B씨의 경우 총 11개의 혐의를 받고 있다.
8평 규모의 방 2개짜리 원룸에서 공동 생활을 하던 이들은 군산 등지에서 알고 지낸 선후배이거나 사실혼 및 연인 사이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는 A씨 등과 ‘페이스북 친구맺기’로 알게 됐고, A씨 등은 대구에 있던 피해자를 지난해 6월 익산 원룸으로 데려온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피해자는 조건만남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A씨의 유혹에 넘어가 익산에 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지적장애를 앓는 피해자가 ‘말을 듣지 않는다’ ‘청소를 제대로 안 한다’ 등 각종 트집을 잡았고, 성매수남에게 자신들의 신상을 말했다는 이유로 세탁실에 가둔 후 음식도 주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장기간의 감금 및 폭행으로 건강상태가 악화된 D씨의 입 등에 물을 집어 넣었고, 결국 D씨는 숨졌다.
조사 결과 A씨 등은 행여나 시신이 발견돼 범행이 들통날까봐 시신을 암매장한 거창 야산을 범행 이튿날부터 모두 5차례나 다시 찾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범행은 지난해 9월 15일 원룸에서 함께 생활하던 또 다른 지적장애 여성의 어머니가 경찰에 “딸이 누군가에게 납치됐다”고 신고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범행을 목격한 피해자가 집을 나가자 경찰에 신고할 것을 우려, 그를 차량에 태워 납치한 뒤 피해자가 살해당한 원룸에 가뒀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신고 당일 원룸에 숨어 있던 A씨 등 4명을 긴급체포하고, 이튿날 대전으로 달아난 공범도 검거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긴 시간 동안 극심하고 참담한 심정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고 나아가 사체까지 유기한 점을 고려할 때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30년과 20년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B씨와 C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 A씨는 원심에서부터 살인죄를 부정해왔다”면서 “하지만 피고인의 구체적인 행동을 살펴보면 피해자가 죽음에 이를 만한 가능성과 위험성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어 살인 고의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의 사인은 익사가 아닌 외력에 의한 다발성 손상이라는 부검 결과가 나왔다”면서 “피고인은 피해자가 성매수남에게 자신들의 신상을 말했다는 이유로 심한 폭행을 일삼고 음식과 물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으며, 피해자는 한여름 고온의 날씨에 비좁은 세탁실에 갇혀 지내면서 최악의 건강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동거인들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매일같이 폭행했고 제대로 된 식사를 받지 못해 나중에는 거의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고 진술했고, 피고인도 피해자의 건강 상태가 좋지 못했다고 말한 점 등에 비춰 볼 때 피해자에게 추가로 폭행이 가해질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예견, 살인죄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양형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경찰 조사에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며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면서 “이후 살인 범행을 제외한 나머지 범행을 인정했으나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사망 책임을 다른 공범들에게 전가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 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피해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뜨거운 물을 붓고 화장실 출입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차마 기본적인 인간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가혹행위를 자행했고, 재판 과정에서도 다른 공범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협박 편지를 보낸 점, 피해자 유족이 여전히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B씨와 C씨에 대해서는 “피고인들이 비록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지만, 피해자를 감금하고 지속해서 폭행하는 등 가혹행위 과정에 동참하는 등 살인을 방조했고 사체까지 유기한 점을 고려할 때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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