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잇따라 발생한 ‘깜깜이(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 대부분이 부산항 러시아 선박에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항만방역의 허술함을 드러내는 사건이 산발적으로 발생해 끈을 더욱 조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감천항 선박에 한정된 전자출입명부(QR코드) 행정명령을 부산항 전체는 물론 선박수리가 대규모로 이뤄지는 영도구 조선소 업체로도 확대하고 방역대응 조치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는 확진자가 나왔던 러시아 선박에서 선원 2명이 경비초소를 뚫고 나가 차를 타고 사라지는가 하면 유전자 증폭(PCR) 진단검사 ‘음성’ 확인서를 받고 부산항에 들어온 러시아 선박에서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2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항에서는 항만방역이 단계적으로 강화됐지만 지난 24일 원양어선 카람호(KALAM, 722톤)에서 러시아 선원 확진자 3명이 더 발생했다.
국립부산검역소는 유전자 증폭 진단검사에 따른 ‘음성’ 확인서는 48시간 이내에 발급받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선원들이 카람호에 탑승하기 전에 또다른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러시아에서 발급받은 음성 확인서 자체에 대한 신뢰성 문제도 거론했다.
같은 날 오전 감천항 서편부두에 정박 중이던 미즈로보스바호(MYSLOVTSOVA, 2058톤)에서는 선원 2명이 무단 도주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즈로보스바호는 지난달 16일 러시아 선원 2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던 선박이다. 다행히 사건이 벌어진 날은 확진자들이 모두 완치됐고 선내 다른 선원들도 자가격리에서 해제된 상태였다.
이들은 법무부의 코로나19 방역강화 조치에 따른 상륙허가신청서도 없이 무단으로 배에서 내렸고 사설 경비업체 직원이 제지했지만 아랑곳 않고 밖으로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미즈로보스바호에서 무단이탈한 2명은 러시아에 있을 때부터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연락했고 해당 지인의 차에 올라탄 뒤 송도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선내 열악한 근무 환경을 두고 선장과 심한 갈등을 겪었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뒤 배에서 무단으로 내려 도주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부산항 밖으로 무단이탈한지 약 6시간만에 송도 해수욕장 인근에서 부산출입국외국인청에 검거됐다.
부산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부산항만공사에서 정식으로 관리하는 곳이라면 비상상황이 통보돼서 곧바로 출동했을 텐데 민간 조선소가 자체적으로 계약을 맺은 사설 경비업체라 그런지 신속하게 제지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감천항 동편부두는 해수부 산하기관인 부산항보안공사에서 보안과 경비를 담당하고 있지만 서편부두는 대부분 민간 조선소에서 사설 경비업체를 고용해 같은 업무를 맡긴 상태다.
부산출입국외국인청은 관련 업체를 상대로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운수업자 등 일반적 의무 위반)를 적용해 처벌할 예정이다. 현행 출입국 관리법 73조에는 운수업자가 입국이나 상륙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의 입국과 상륙을 방지해야 한다.
특히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선박 관련 확진자와 접촉한 경우 자가격리 해제 기준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접촉자 자가격리해제 이전에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는 대상자는 Δ의료기관 종사자(간병인 포함) Δ사회복지시설 종사자 Δ학생과 교직원 Δ확진환자 동거인 Δ만 65세 이상 등 5가지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페트로원호에 승선했던 190번 확진자가 자가격리에서 해제되기 전에 코로나19 검사를 했다면 ‘양성’으로 판정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코로나19 검사가 마지막에 한번 더 이뤄졌다면 지역 내 감염에 대한 선제적인 조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잠복기간이 사람마다 다르고 증상이 뒤늦게 발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가격리 해제 전에 코로나19 검사를 선별적으로만 실시하는 현행 질본 방침에 ‘조그만’ 방역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접촉자 격리해제 이전에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하는 대상 목록에 선박 관련자도 추가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190번 확진자의 경우 항만 유관기관이 선박의 실승선자 명단을 관리하지 않아 자가격리 대상자 특정이 늦어졌고 약 5일 늦게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페트로원호에 승선했던 190번은 자가격리에 들어가기 전에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아내 183번이 같은 GR유전자형으로 확인되면서 ‘부경보건고’와 ‘부산기계공고’ 집단 감염간에 연결고리도 밝혀졌다.
190번 확진자의 경우 코 안쪽을 긁어내는 상기도(上氣道) 코로나19 검사에서 당초 ‘음성’이 나왔지만 아내가 확진된 이후 인후와 기관지 등 호흡기를 아우르는 하기도(下氣道)에서 검체를 채취한 결과 ‘양성’으로 확진됐다.
이는 조금이라도 느슨한 방역망 틈 사이로 코로나19가 어떻게 지역 사회로 번지는지 일깨워주는 사례다.
24일 부산시 보건당국은 코로나19 대응 정례브리핑을 통해 러시아 선박에서 확인된 유전자 유형 ‘GR그룹’이 선박공구업체 집단감염 사례에서도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선박에서 시작된 항만발 지역감염이 3곳에서 집단감염을 일으킨 셈이다.
GR그룹은 현재 국내에서 부산항에 입항한 러시아 선박과 이로 인한 부산지역 감염 사례를 제외하고는 국내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전자 유형이다. 부산지역 내 확진자 가운데 GR그룹에 해당하는 유전자 유형은 모두 43명에 달한다.
선박수리업체 직원들이 자주 오가는 감천항뿐 아니라 부산항 전체로 전자출입명부 시행을 확대하고 조선소가 밀집된 영도구 남항동, 청학동, 대평동, 봉래동에서도 항만 방역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부산의 한 수리업체 관계자는 “영도구 청학동 인근에도 러시아 선박이 많은데 그쪽 업체 관계자는 ‘여기로 아예 오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라며 “러시아를 거쳐 부산항에 입항하는 선박 관련자들이 감천항만 오는 것도 아니고 선박수리의 경우 영도에도 조선소가 상당히 많은데 방역 수준을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고 확진자가 많이 나온 곳만 일부 적용하는 것은 코로나19 방역 대응을 등한시하고 느슨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부산항에서는 지난 6월 22일부터 현재까지 선박 11척에서 선원 확진자 105명이 발생했다. 확진자는 러시아 선원 97명, 한국인 2명, 인도네시아 선원 6명으로 집계된다. 감천항에 입항하는 선박을 대상으로 전자출입명부가 오는 25일부터 시행되면서 항만유관기관의 합동점검이 예정돼 있었으나 제8호 태풍 ‘바비’ 북상으로 인해 잠정 연기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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