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로 층간소음 갈등 털어내… 정보교환도 OK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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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아파트 ‘톡톡카드’ 성공사례
아파트 우편함 옆에 게시판 설치, 주차 등 이웃간 갈등해소 통로로
홍보-디자인 개선으로 호응 높아져… 서울시, 공동사무실에도 적용 검토

서울시의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으로 은평구 백련산 힐스테이트 3단지에 설치된 ‘토닥토닥 톡톡’ 게시판의 모습(왼쪽). 주민이 작성한 층간소음 양해 카드.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으로 은평구 백련산 힐스테이트 3단지에 설치된 ‘토닥토닥 톡톡’ 게시판의 모습(왼쪽). 주민이 작성한 층간소음 양해 카드. 서울시 제공
지난 주말 서울 은평구 백련산 힐스테이트 3단지에 사는 A 씨는 윗집에서 들린 ‘쿵쿵’ 소리에 휴식 시간을 망쳤다. 화가 났지만 윗집을 찾아가거나 관리사무소를 통해 항의하는 대신 그는 아파트 우편함 옆의 게시판을 찾았다. 이 아파트에는 서울시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을 통해 설치한 ‘토닥토닥 톡톡(TalkTalk)’ 게시판이 설치돼 있다. A 씨는 종이 카드에 ‘주말 동안 소음 때문에 힘들었다’는 글을 적어 게시판에 붙였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손자가 놀러와 시끄러웠다. 미안하다. 다음부턴 주의하고 미리 알려드리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관련 상담은 2012년 8795건에서 지난해 2만8231건으로 대폭 늘었다. 서울시민의 62%는 아파트, 연립·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에 산다. 아파트 층간소음에서 완벽하게 자유롭기는 어렵다. 지난달 26일 동작구의 한 아파트에선 층간소음으로 말다툼을 하던 주민들이 둔기를 휘둘러 다치는 일도 벌어졌다.

토닥토닥 톡톡 게시판은 층간소음을 디자인 거버넌스로 해결해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디자인 거버넌스는 시민이 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찾아 이를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사업을 뜻한다. 서울시가 디자인 거버넌스 담당 부서에 접수된 ‘층간소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작고 따뜻한 아이디어로 해결해주세요’라는 민원을 공공디자인을 활용해 해결책을 제시하기로 했다.

2016년 12월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우편함 옆에 ‘노란 우체국’이라는 카드함이 마련됐다. 디자인 거버넌스 담당 부서는 층간소음, 주차문제 등 크고 작은 주민 갈등의 원인을 ‘주민 소통 부재’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소통을 늘려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주민들은 노란 우체국에 비치된 카드를 뽑아 갈등 원인을 작성하고 가구별 우편함에 선물 등과 함께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취지만큼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노란 우체국에 비치된 소통카드의 디자인은 다양해서 주민들이 어떤 카드를 써야 할지 잘 몰랐다. 또 홍보도 부족했다. 원인에 따른 소통 부재라는 원인 진단은 제대로 했지만 주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디자인을 만들지는 못한 셈이다.

서울시 디자인 거버넌스 담당 부서는 소통카드를 2018년도 심화 사업으로 선정해 소통 방식을 보강하기로 했다. 일단 카드의 디자인을 단순하게 바꿨다. 공유 나눔 양해 답장 등 4가지 종류로만 구분하고 대신 구체적인 내용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늘렸다. 또 가구별 우편함이 아니라 공용 게시판에 카드를 붙여 소통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올해 5월 말 공용 게시판을 은평구 백련산 힐스테이트 3단지 4곳 통로에 설치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달 초까지 200건이 넘는 카드가 공용 게시판을 통해 다툼 해결 등 주민 소통에 쓰였다. 공사나 손님 방문 등을 앞두고 아랫집에 양해를 구하는 ‘양해카드’도 20여 건 넘게 쓰였다. 카드와 함께 과자 같은 작은 선물을 곁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남거나 안 쓰는 물건을 공유하는 ‘나눔카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302동에서는 올 6월 햄스터 분양 글이 올라왔고 분양 이후 모습까지 게시판을 통해 공유했다. 다른 게시판에는 어린 학생이 서툴게 쓴 ‘우리 친해지기 위해 서로 인사해요’라는 글에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자’는 어른들의 답장이 이어졌다. 이한영 관리소장은 “주민 간의 인사가 늘어난 것을 부쩍 체감한다”며 “층간소음이나 주차 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일도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토닥토닥 톡톡 매뉴얼과 디자인을 다른 공동주택뿐만 아니라 공동 사무실이나 기업 등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토닥토닥 톡톡 게시판#층간소음#디자인 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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