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들리면 더 심란”… 취준생-나홀로가구 ‘우울한 크리스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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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면 부쩍 느는 우울증 환자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A 씨(24)는 요즘 들어 부쩍 기운이 빠지고 우울감을 자주 느낀다. 대학 4학년인 A 씨는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준비 중인데 지금까지 4차례나 낙방의 쓴맛을 봤다. 두 달 뒤 5번째 시험을 앞두고 있는 A 씨는 올 연말 가족이 있는 부산에 가지 않고 서울에서 계속 공부할 생각이다. A 씨는 작년 연말에도 고향인 부산에 가지 않았다. A 씨는 “2016년부터 CPA 시험을 보기 시작했는데 시험공부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가족들을 보러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며 “이맘때면 다른 사람들은 가족, 커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우울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변호사 B 씨(38)는 4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다. 1인 가구로 10년 넘게 혼자 살아온 그는 “내 얘기를 마음 편히 털어놓을 사람이 주변에 없어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B 씨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지낼 생각에 마음이 더 허하다”며 “요즘은 길에서 크리스마스캐럴만 들어도 우울감이 더 커진다”고 했다.

A 씨와 B 씨처럼 ‘크리스마스 블루스(우울)’ 등 연말이 되면 평소보다 기분이 더 가라앉고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맘때의 들뜬 분위기와 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보고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12월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12월에 병의원 진료를 받은 우울증 환자 수는 평균 26만413명으로 같은 기간 1∼11월의 월평균(25만3433명)보다 7000명가량이 더 많았다. 최근 5년간 12월의 우울증 환자 수는 늘 1∼11월의 월 평균치보다 많았다. 같은 기간 우울증 환자들이 병원을 찾은 내원 일수에서도 12월 평균(45만35일)이 1∼11월 평균(43만7631일)보다 1만2000일 이상 많았다.

전문가들은 ‘크리스마스 블루스’의 가장 큰 원인으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꼽는다. 김의태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TV 드라마나 광고 등 대중매체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모두가 행복한 날’인 것처럼 표현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할아버지 손에 컸다는 C 씨(19)는 택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해결해오다 최근 허리를 다쳐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나는 돈 걱정으로 힘든데 친구들이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것을 보면 우울해진다”고 했다.

지난해 한 결혼정보업체가 미혼 남녀 36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감정’을 묻는 질문에 ‘우울감’이라는 대답이 25.8%나 됐다. ‘부러움’은 25.5%였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크리스마스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사람들이 많아 상담사들이 긴장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느끼는 우울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개의 경우 ‘나는 우울증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만 우울감을 인정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울증 환자들은 상담과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상태가 나아진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울감에 빠진 상태에서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되면 스트레스가 오히려 더 늘어날 수 있다”며 “그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외로움을 극복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크리스마스 블루스#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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