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그 자리서…100년 후배들, ‘3·1만세운동’ 재현 플래시몹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7일 22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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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기념 ‘100인 만세운동 플래시몹‘ 준비 현장
긴 겨울방학이 끝나가던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스포츠과학관에서 고려대학생 박현지 씨(21·여)가 팔다리를 뻗으며 율동을 배우고 있었다. 박 씨가 아침나절부터 이곳에서 어설프게나마 몸을 움직이는 까닭은 다음 달 1일의 플래시몹(사전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모여 특정 행위를 한 뒤 흩어지는 퍼포먼스)을 위해서다. ‘100인 만세운동 플래시몹’이다.

올 3·1절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는 많은 행사가 벌어진다. 100인 만세운동 플래시몹은 3·1절 당일 종로 보신각에서 보신각종 타종 직후 그 앞에서 펼쳐진다. 여성은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남성은 하얀 저고리와 바지를 입는 것은 평범해 보이지만 이 만세운동 플래시몹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참가학생 100명이 100년 전 보신각 앞에서 만세를 부른 학생들의 학교 후배라는 점이다.

독립기념관이 제공한 ‘서울지역 중등급 이상 학생의 구속자 내역’에 따르면 100년 전 그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학생들의 출신 학교는 경성의학·공업전문학교 보성법률상업학교 연희전문학교 불교중앙학림 배재고등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중앙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정신여학교 경신학교 중동학교 선린상업학교 등이다.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3.1운동 100주년 맞이 플래시몹 동작을 연습하고 있는 서울시내 14개 고교 및 대학교 
학생들. 이들의 학교는 100년 전 그날 만세를 불렀던 학생들의 출신 학교다.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3.1운동 100주년 맞이 플래시몹 동작을 연습하고 있는 서울시내 14개 고교 및 대학교 학생들. 이들의 학교는 100년 전 그날 만세를 불렀던 학생들의 출신 학교다.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이들 학교 가운데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고교 및 대학은 총 14개교다. 고려대 동국대 서울대 연세대 등 대학 4개교와 경기고 경신고 배재고 보성고 선린인터넷고 이화여고 정신여고 중앙고 중동고 휘문고 등 고교 10개교다. 이들 학교 재학생 102명이 플래시몹에 참여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모였다. 박 씨는 어릴 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의 영향이 컸다. 전남 정읍에 살던 외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시집을 빨리 갔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이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먹을 게 없어 나무껍질을 벗겨 죽을 쒀먹었다고 했다. 박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사를 챙겨보곤 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해 행동에 나서지 못해 아쉽던 차에 대학 동아리 사이트에 올라온 플래시몹 참여 학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박 씨는 “유튜브에서 플래시몹 동영상 보는 걸 좋아했는데 그 플래시몹으로 3·1운동을 기릴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했다”며 “기억이 남는 일 없이 보낼 뻔한 겨울방학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낼 것 같다”고 말했다.

어색할 법도 한데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한 연습은 화기애애하게 이뤄졌다. 오전에 모인 학생 60여 명은 열 명씩 6개조로 나눠 안무를 연습했다. 서로 마주서서 손을 맞잡고 좌우로 몸을 비틀며 준비운동을 하고는 둥글게 모여 점프하거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등의 동작을 익혔다. 안무 영상을 예습해온 덕에 평상시 몸을 쓸 일이 많지 않던 학생들도 곧잘 따라했다. 안무 보조로 지목된 학생이 “잘 못춘다”며 손사래 치자 안무를 가르치던 청년이 “독립운동도 얼떨결에 시작하기도 하고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예요”라며 끌어당기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중동고 노영화 군(17)은 “한국사교과서에서 3·1운동에 우리 학교도 참여했다는 걸 알고 신기하면서도 뿌듯했다”며 “조금이나마 그 의미를 함께하고 싶어 친구들과 참여했다”고 말했다. 정영준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100년 만에 후배들이 선배들의 고귀한 뜻을 잇는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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