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 풍경]추억을 소환하는 목욕탕 굴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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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는 새로운 것(뉴·new)과 옛것(레트로·retro)을 합친 말입니다. 복고를 새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새 의미를 찾는 새 트렌드입니다. 인천 구석구석에 온전히 살아있는 과거를 현대 감각으로 되짚어 봅니다.》
 

때를 벗기기 위한 때가 있었다. 명절 때를 앞두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동네 목욕탕으로 등을 떠밀었다. 목욕탕 탈의실은 이미 시장 바닥이다. 열쇠 달린 보관함은 고사하고 나뒹굴던 플라스틱 바구니조차 챙기기 어렵다. 수증기 자욱한 탕 속은 거대한 콩나물시루였다. 쌀뜨물 같은 물속에 겨우 알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목욕물은 화학적 산소요구량을 넘어섰다. 주인이 뜰채로 고무지우개 때처럼 생긴 부유물을 걷어냈다. 옆의 꼬마가 수상한 몸서리를 친다. 오늘은 아이들끼리만 와서 그나마 행복하다. 어른과 함께 왔다면 아이들은 ‘이태리 타올’의 가학에 핏빛 몸이 됐을 것이다.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바나나우유는 모든 고난을 보상해준다. 더 이상 동네 목욕탕 굴뚝에서는 연기가 오르지 않는다. 추억을 소환하는 낡은 탑으로 우뚝 서 있을 뿐이다.
 
글·사진=유동현 인천이야기발전소대표
#목욕탕 굴뚝#뉴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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