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받지 못한 공익제보자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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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女교직원, 국민신문고에 교감 승진대상자 비판 글 올려
승진 탈락자 이의제기 받은 심사위… 제보자 정보 포함된 답변서 보내
신분 노출뒤 우울증… 극단 선택
유족 “해당 교사에 협박 당했다”

20대 교직원이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교사를 비판하는 글을 국민신문고에 올린 뒤 우울증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족은 국민신문고에 올린 교직원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해당 교사로부터 협박을 당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남 장성경찰서에 따르면 장성의 한 학교 20대 교직원 A 씨(여)는 지난해 1월 15일 국민신문고에 자신의 어머니 명의로 “교사 B 씨(60)가 교감 승진 대상자로 부적합하다”는 글을 올렸다. A 씨 남편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아내가 8년 동안 교직원으로 근무했다. 좋은 교사들이 많은데 학교에 잘 나오지 않던 B 씨가 교감 승진 대상자로 거론되자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글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B 씨는 지난해 2월 교감 승진에서 탈락했고, 그 다음 달인 3월 3일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했다. 관련 규정상 소청심사위는 소청을 제기한 사람에게 답변서를 보내야 하는데, B 씨의 승진 탈락 사유를 밝히는 답변서에 전남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A 씨의 국민신문고 글이 그대로 첨부됐다. 여기엔 A 씨 어머니의 실명과 휴대전화,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B 씨는 이를 토대로 제보자가 A 씨라는 것을 알아냈다. 지난해 4, 5월 B 씨는 A 씨에게 “왜 이런 제보를 했느냐” “배후에 누가 있느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21차례 보냈다.

A 씨는 자신이 제보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4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고,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결국 지난해 12월 3일 광주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씨는 개인정보 유출 이전에는 우울증을 앓은 적이 없다고 유족은 주장하고 있다. A 씨의 유족은 지난해 12월 10일 B 씨를 협박 혐의로, 전남도교육청 직원과 소청심사위 직원 등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각각 경찰에 고소했다.

A 씨의 남편은 “아내가 생전에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제보자)이 가해자가 됐다. 약자가 피해를 보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유서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정보에 대한 관리 부실이 한 사람과 가정을 파괴한 만큼 공직사회가 경각심을 갖도록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B 씨가 A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협박에 해당하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A 씨의 극단적인 선택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연관성이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심리 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할 방침이다. 경찰은 전남도교육청과 소청심사위가 제보자의 개인정보를 안이하게 다룬 정황을 확인하고,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장성=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교직원#우울증#국민신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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