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삼성전자 사장, 사과문 낭독 후 피해자·유가족과 악수
‘반도체 백혈병’ 종지부, 황상기 대표 “딸 살아있다면 좋아했을 것”
“병으로 고통받은 직원들과 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DS부문장)이 사과문 낭독을 마치고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삼성전차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는 딸의 손을 꽉 잡았다. 딸 혜경씨와 김 사장을 번갈아 바라보는 김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2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 합의 협약식’이 열렸다. 약 1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협약식에는 김기남 사장과 황상기 반올림 대표를 비롯해 피해자와 가족, 반올림 관계자 2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 시작 15분 전 도착한 황상기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뒤이어 김씨가 딸의 휠체어를 끌고 입장했다. 황 대표와 김씨는 ‘반도체 노동자에게 건강과 인권을’이라는 문구가 프린팅된 티셔츠를 입었다. 뇌 손상으로 신체 마비 증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씨는 취재진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들며 방긋 웃었다.
김기남 사장은 10시28분 검은색 양복에 짙은 남색 넥타이를 맨 채 행사장에 홀로 입장했다. 김 사장은 취재진을 사이에 두고 반올림 관계자들의 반대편에 마련된 자리에 홀로 착석했다. 뒤이어 심상정 정의당 의원, 김지형 전 대법관 등이 입장해 황 대표와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조정위원장인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변호사)의 인사말이 진행되는 동안 김 사장은 입이 바싹 마르는 듯 연신 입술에 침을 바르고 물을 마셨다. 이어진 협약 서명식에서 김 사장은 황 대표에게 먼저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황 대표가 이에 응하며 처음으로 손을 맞잡았다.
김 사장은 약 6분간 미리 준비한 사과문을 담담한 목소리로 읽었다. 삼성전자의 공식 사과 입장과 향후 보상 계획을 담았다. 김 사장은 두 차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처음 허리를 숙여 사과를 할 때부터 행사가 끝날 때까지 김씨의 눈에선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김 사장은 사과문을 발표한 뒤 반올림 좌석으로 다가가 황 대표와 한씨, 김씨에게 차례로 악수를 청했다. 한씨와 김씨도 김 사장과 손을 맞잡았다. 김 조정위원장과 김 사장, 황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을 하면서 지난 11년간 깊은 상처를 남긴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태는 종지부를 찍었다.
고(故) 황유미씨의 아버지인 황 대표는 행사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유미에게 억울한 일을 꼭 밝히겠다고 약속했는데 산업재해 판정도 법원으로부터 받고, 오늘 미진하지만 삼성의 사과도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유미의 희생으로 다른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조금 더 향상됐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유미가 살아 있다면 다른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