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고시원’ 생존자 “배관잡고 옆 창문 두드렸지만 무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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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1월 9일 1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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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문 벌겋게 달아 창문으로 나와…속옷차림 대피도”

9일 오전 5시쯤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국일고시원 3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진 가운데 극적으로 탈출한 생존자들은 창틀에 고인 빗물로 코를 적셔 가며 불을 피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일부는 순식간에 번진 화마로 뒤통수와 등에 열기를 느끼는 상황에서 창문을 열고 탈출했다고 증언했다.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건설노동자 김모씨(59)는 탈출 과정에서 이미 뜨겁게 달궈진 창틀을 잡았다가 왼손에 2도 화상을 입었다. 김씨는 현재 안정을 취하고 있어 병원 관계자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불이 난 고시원에서 3년 동안 살았다는 김씨는 “혼자 3층에서 건물 외부 파이프(배관)를 타고 밖으로 빠져나왔다”며 “내려오는 과정에서 옆으로 이동해 다른 방 창문도 두드렸지만 응답이 없었는데 아마 죽은 것 같았다”고 병원 관계자를 통해 밝혔다.

김씨는 “보통 일을 나가기 전에 오전 4~5시에 일어나는데, 5시 조금 전에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을 떴다가 밖에서 ‘우당탕’ 소리를 들었다”며 “다행히 전날부터 내린 빗물이 창틀에 고여 그 물로 코와 입을 적시고 내려왔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처음 불이 난 것으로 알려진 3층 출입구에서 가까운 방에 머물렀다는 김씨는 “불이 난 걸 확인하고 양말을 신고 뭐라도 뒤집어쓰고 나가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불길이 닥쳤다”며 “너무 무서웠고, 창이 좁아서 어깨를 빼는 데 힘이 들었다”고 위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사망자가 6명에서 7명으로 늘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괴로워했다고 병원 관계자는 전했다.

2층에 거주하던 김모씨(41·여)는 “누가 소리를 질러 놀라서 대피했는데, 깊게 잤다면 늦게 나왔을 것”이라며 “빠져나와서 보니 3층 창문에 누가 매달려 있었는데, 겁이 나서 보지 못하겠더라”고 고개를 저었다.

3층에 거주하던 이모씨는 “싸우는 소리가 나서 뭐지 하고 일어났는데 ‘불이야’ 소리가 들려서 대피했다”며 “(나와 보니) 팬티만 입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외국인분은 추워서 떨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3층 거주자 A씨(58)는 “비명소리에 깨서 문을 열었더니 불이 막 번지는 게 보였고, 잠깐인데도 숨을 못 쉬겠더라”며 “창문으로 나와 뒷건물 공장 지붕 쪽으로 뛰어 허리랑 꼬리뼈를 다쳤는데, 안쪽 방에 있던 누군가가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벽을 친 게 날 살린 셈”이라고 털어놨다.

고시원 3층에서 7개월 동안 거주한 이모씨(63)는 “소주 한 잔에 티격태격하는 소리인가 했는데 비명소리였다”며 “문을 여니 천장에서 불이 들어왔고, 등·허리와 뒤통수가 뜨끈뜨근해 창문으로 나가 에어콘 배관을 타고 내려왔다”고 전했다.

불이 난 고시원은 1983년 사용이 승인된 낡은 건물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어 피해가 더 커진 것으로 드러났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된 2009년 7월 이전부터 운영된 고시원은 화재에 취약했지만 당국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강제할 수 없었다.

서울 종로소방서에 따르면 해당 고시원은 지난 5월 소방점검에서는 특별한 지적사항이 없었다. 올해 봄부터 시행한 소방특별조사 추진계획의 일환으로 5월15일 소방점검을 받았고, 점검 당시 설비 등과 관련해 별도의 지적사항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발생한 화재로 현재까지 고시원 거주자 26명 중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부상자들은 고대안암병원, 서울백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서울대병원, 한강성심병원, 한양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강북삼성병원 등 인근 병원 8곳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수색 종료 직후 감식반을 투입하고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 확보에 들어가는 등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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