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으로 위협 성폭행… 군복만 봐도 속이 울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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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계엄군 성폭행 피해자 증언
정부 차원 17건 첫 공식 발표… 3-7-11공수 3개부대 가해자 지목

1980년 5월 19일 여고생 A 양은 ‘서둘러 귀가하라’는 담임교사의 말을 듣고 학교를 나섰다. 버스를 타려다 계엄군에게 잡혀 군용트럭에 강제로 태워진 A 양은 계엄군들에게 잔혹하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는 지금도 정신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5·18기념재단이 펴낸 ‘부서진 풍경’이라는 책에 적힌 A 양의 피해 내용이다.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문헌 검토 과정에서 이 사례를 발견했으며, 관계자 진술 등을 받아 성폭행 피해 사례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공동조사단이 공개한 조사 결과에는 1980년 5월 계엄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38년이 지나도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들의 심경이 담겼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춰 버렸다”고 호소했다.

6월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공동으로 구성한 공동조사단은 이날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17건의 성폭행 등 다수의 여성인권 침해 행위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중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조사하고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폭행 피해자 대다수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2명 이상의 군인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5·18 초기인 1980년 5월 19∼21일 피해를 당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 행위도 43건이나 있었다. 공동조사단은 관련 문헌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속옷 차림의 여성을 대검으로 희롱하거나 성고문을 한 내용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일부 피해자는 유방과 성기에서 자창(刺創·날카로운 물건에 찔린 상처)이 발견됐다는 내용도 있다. 학생과 임산부 등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도 다수 확인됐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지만 부대 투입 시기, 작전 동선, 복장 등을 봤을 때 7공수, 3공수, 11공수 등 3개 부대에 가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독립기구로 출범할 예정인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공동조사단의 자료를 넘겨받아 추가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성폭력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계엄군에 의해 일가족의 삶이 완전히 파괴된 경우도 적지 않다. ‘광주5월민중항쟁 사료전집’에 따르면 고교 졸업 뒤 취업 준비 중이던 손모 씨(당시 20세·여)는 1980년 5월 22일 온몸에 멍이 들고 골반과 흉부 등에 총상을 입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충격으로 손 씨의 아버지는 1년 뒤, 어머니는 6년 뒤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이윤정 오월민주여성회장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아직도 5월만 되면 ‘머리가 아프다’ 등의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광주=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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