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전처 살인’은 국가책임…가정폭력처벌법 전면 쇄신하라”

  • 뉴스1
  • 입력 2018년 10월 29일 12시 44분


코멘트

여성단체 기자회견…“가족유지 초점 둔 가폭법 문제”
“제2, 제3의 피해자 사라지지 않을 것”

“가정폭력범죄는 국가가 가해자다”, “가정폭력에 대한 사법적 의무를 방기한 경찰·검찰·법원은 각성하라”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에서 피의자 김모씨(49)가 이혼 과정 중 감정이 쌓였다는 이유로 위성항법장치(GPS)와 가발 등을 치밀하게 준비해 전 부인 이모씨(47·여)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여성단체들이 이를 ‘국가 가정폭력 대응 시스템의 실패’로 규정하고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쇄신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단체연합 등 690개 여성단체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라”며 이렇게 밝혔다. 스스로를 강서구 사건 피해자의 친구라고 밝힌 여성도 참석해 “(가해자) 사형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이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구제하기보다 ‘가정 유지’에 초점을 두고 있어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김명진 ‘여성인권 실현을 위한 전국가정폭력상담소연대’ 준비위원회 위원은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이들 중 99%가 풀려났고 구속률은 0.995%로 1%가 채 되지 않는다”며 “기소율도 매우 낮고, 형사기소가 된다 하더라도 (가해자가) 상담을 받고 오면 기소를 않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가 있어 무력화되고 있다”고 제도의 실효성을 꼬집었다.

김 위원은 “가족을 유지하는 데 제정목적을 둔 가정폭력처벌법의 허점으로 김씨와 같은 가해자가 재생산된다”며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해당 법을 개정하고, 가해자가 상담이나 교육을 받는 것을 조건부로 한 기소유예를 폐지하라고 권고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자는 처벌의 대상이지 상담의 대상이 아니다”며 “가정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둔 현행법이 사라지지 않는 한 김씨와 같은 가해자는 만연하고, 죽음으로 몰리는 제2, 제3의 피해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민경 변호사도 “법원행정처는 협의이혼인 경우에는 이혼 과정에서 의무면담제도를 운영하고, 혼인을 회복하기 위한 부부상담을 적극 권유해서 이를 거절하는 피해자를 가해자가 비난하게 만든다”며 “(현행법 목적이) 가정의 회복에 치우쳐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지나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2013년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경찰 내부에서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 안에서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인식 비율이 57.9%”라며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최초로 만나는 공권력인 경찰이 폭력을 외면하고 방조하는 사이 피해 여성은 죽어가고 있다”고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자신을 강서구 사건 피해자의 친구라고 밝힌 한 여성은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기자회견에 참석해 떨리는 목소리로 가해자 엄벌을 요구했다.

이 여성은 “사고를 당하기 바로 전날에도 조심하라고 말을 했는데, 진작 탄원서를 넣을 것을 너무 후회스럽다”며 “친구는 전 남편이 온 가족을 공포로 몰고 가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졌는데, 친구가 한을 풀고 편안히 지내도록 사형이 선고되게 시민 여러분이 도와달라”고 울먹였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가해자의 말만 경청하고 아무 조치도 없이 돌아가버렸다”며 “검찰과 법원도 불기소와 집행유예라는 관대한 판결로 피해자인 나를 좌절시켰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2009~2017년 동안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최소 824명의 여성이 살해됐고 최소 602명의 여성이 살해될 위험에 처했다”며 “응급조치와 (긴급)임시조치 등 경찰이 피해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가 있지만 작동하지 않고 있더”고 지적했다.

이어 “‘강서구 가정폭력 가해자에 의한 여성살해사건’ 역시 청원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사건의 본질을 알리려는 유족의 노력이 없었다면 ‘가정불화’나 ‘부부싸움’ 등의 동기로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라며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 엄중 처벌, 가정폭력 대응시스템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한국여성의전화 등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을 강력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시스템 전면 쇄신을 촉구했다. 2018.10.29/뉴스1 © News1

한국여성의전화 등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을 강력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시스템 전면 쇄신을 촉구했다. 2018.10.29/뉴스1 © News1

주차장에서 전 부인을 흉기로 살해한 전 남편 김모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25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 씨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부인 이 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 News1

주차장에서 전 부인을 흉기로 살해한 전 남편 김모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25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 씨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부인 이 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 News1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