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치료 받으면 50% 할인”… SNS 광고비로 月 3억 ‘펑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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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25억 먹튀 의혹’ 투명치과사태로 본 ‘이벤트 병원’ 실태

4일 ‘먹튀 논란’이 불거진 서울 강남구 투명치과 입구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 병원은 각종 이벤트를 앞세워 저렴한 가격으로 환자를 모으는 ‘이벤트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올 5월경부터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영업을 사실상 중단해 1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고액의 치료비를 내고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4일 ‘먹튀 논란’이 불거진 서울 강남구 투명치과 입구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 병원은 각종 이벤트를 앞세워 저렴한 가격으로 환자를 모으는 ‘이벤트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올 5월경부터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영업을 사실상 중단해 1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고액의 치료비를 내고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석 달 전 병원을 찾았을 때 ‘군인은 다음 휴가 때 꼭 치료해주겠다’고 해서 달려왔는데 오늘도 허탕이네요.”

4일 오전 11시경 서울 강남구의 투명치과 별관 3층 계단. 군복을 입은 황모 씨(21)가 허탈한 표정으로 닫힌 병원 문 앞 계단에 앉아 있었다. 황 씨는 올 2월 이 치과에서 교정 치료를 받기로 하고 300여만 원을 냈다. 하지만 5월경 병원이 재정 악화,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돌연 영업을 중단하며 날벼락을 맞았다. 현재 투명치과는 불규칙적으로 문을 열고 일부 환자에게만 부분적으로 진료를 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하염없이 병원 앞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투명치과는 이른바 ‘이벤트 병원’으로 알려진 병원이다. 이벤트 병원은 각종 할인 이벤트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뜻한다. 황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지금 즉시 치료 받으면 50% 할인’이라는 광고를 보고 이 병원을 찾았다가 피해를 입었다.

강남경찰서는 투명치과 원장 A 씨를 사기 혐의 등으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가 1000여 명, 피해액은 25억 원이 넘는다. 황 씨는 “이벤트 가격에 혹해서 치료를 시작한 게 무척 후회된다. 다른 병원에 또 수백만 원을 내고 치료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투명치과를 다시 찾아왔다”고 말했다.

○ 하염없이 진료 기다리는 피해자들

투명치과 ‘먹튀 논란’이 불거진 지 5개월이 지났지만 피해를 입고도 이 병원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계속됐다. 이날 투명치과 앞에서는 40여 명이 차가운 계단 바닥에 앉아 진료를 기다렸다. 환불을 받는 건 사실상 어렵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이날 오후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자 전국 각지에서 병원으로 몰려온 것이다.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힘겹게 병원을 찾은 환자도 보였다. 환자들은 대기하던 자리를 뺏길까 봐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했다.

투명치과 건물 곳곳에는 ‘정상 진료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최소한의 의료 인력으로 일부 환자에게 불규칙적으로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9월 중순 A 씨에게 직접 진료를 받았다는 김모 씨(23·여)는 “420만 원의 피해를 입은 뒤 ‘온라인 예약’이 열렸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 거액을 내고 다른 병원을 찾을 여력이 없으니 믿음이 안 가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불규칙적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기 혐의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투명치과처럼 SNS나 각종 광고물을 통해 치과나 피부과, 성형외과 등에서 하는 미용 목적의 치료에 대한 할인 이벤트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벤트로 환자를 끌어모아 ‘박리다매(薄利多賣)’ 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투명치과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 B 씨에 따르면 이 병원 환자 90% 이상은 SNS 등에서 이벤트 광고를 보고 온 손님이라고 한다. B 씨는 “할인 이벤트 등 광고비로만 한 달에 약 3억 원을 썼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에서 다른 병원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거나 치료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해 환자가 줄어들면 광고비 등 고정 비용이 높아 순식간에 경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 ‘45% 할인’ 광고… 실제 방문하면 “이벤트 없다”

이벤트 병원의 대표적인 홍보 방법은 특정 시기나 대상에게만 40∼50%의 ‘파격 할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에게만 45% 할인’이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생년월일에 5가 들어갈 경우 할인을 제공하는 ‘555 이벤트’ 등이다. 쌍꺼풀수술과 눈매교정술처럼 고가와 저가의 시술을 조합하는 ‘묶어 팔기’나 이벤트 당첨자에게만 특별 할인을 제공한다고 부추기는 방식도 널리 사용된다.

성형이나 미용시술 등 분야에서 가격을 할인하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문제는 ‘가짜 할인 이벤트’가 많다는 것이다. 투명치과 피해자 박모 씨(21·여)는 “‘치아 3D(3차원) 엑스레이 무료 검사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을 찾은 뒤 400만 원을 결제했다”며 “그런데 알고 보니 지원만 하면 모두 당첨되는 이벤트였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3일 손님으로 가장해 ‘45% 특별 할인 이벤트’를 진행 중이라는 서울 강남의 한 치과를 찾았다. 하지만 이벤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상담실장은 “솔직히 45% 할인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손님들이 할인 이벤트 광고를 보고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적어둔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후 슬며시 다른 고가의 추천 상품을 건넸다. 자리를 뜨려고 하자 “지금 결제를 해야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날 방문한 ‘이벤트 병원’ 5곳 모두 실제 할인 상품이 없거나 이벤트 상품 대신 다른 고가의 상품을 추천했다.

○ “이벤트에 끌려 충동구매 말아야”

이벤트 병원에서는 상담실장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실장의 ‘말발’과 영업 능력에 따라 병원 수익이 좌지우지되기 때문. 의료법에 의사가 담당하도록 돼 있는 구체적인 수술 방법까지 상담실장이 설명하는 경우가 잦다. 상담실장은 기본급과 더불어 자신이 받은 환자가 결제한 금액의 일정 부분을 성과급으로 챙긴다고 한다. 한 성형외과에서 근무하는 의사 C 씨는 “환자들과 가격 흥정을 하는 건 상담실장의 몫이다. 의사들은 진료만 할 뿐 가격적인 부분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의료 전문 변호사 신현호 씨는 “미모와 언변을 갖춘 상담실장이 전면에 나서서 환자들을 구워삶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막상 사고가 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벤트 병원 피해자들은 쉽사리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 피해자들이 인터넷에 피해 사례를 공유하면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하겠다’고 압박하는 병원도 있기 때문이다. 치료 비용을 초기에 일시불로 받은 뒤 책임을 환자에게 돌리는 ‘나 몰라라 병원’도 있다. D 씨(26·여)는 ‘현장 결제를 하면 레이저시술 1회를 추가 제공한다’는 피부과 이벤트를 보고 결제를 했다. 시술을 받자마자 눈 밑에 큰 물집이 생겼지만 병원 측은 ‘이벤트 상품은 환불이 불가하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는 “의사가 ‘피곤하면 이런 반응이 올 수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 행위는 가격에 의한 ‘시장 논리’로만 작동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이벤트 병원이 범람하면 의료의 질은 뒷전으로 밀리고 가격 경쟁에 매몰돼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 윤영호 한국건강학회 이사장은 “의료기관에 대한 평가, 수술 횟수와 성과 등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환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들도 이벤트 병원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가격도 중요하지만 본인에게 적절한 치료인지를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정민호 전 대한치과교정학회 기획이사는 “‘겨울철에만 암 수술을 50% 할인한다’고 광고한다면 다들 의심할 텐데 미용 목적의 의료 행위는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할인 이벤트에 혹해 ‘충동구매’를 할 게 아니라 여러 병원을 방문하고 비교한 뒤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병원#sns#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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