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0시 20분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 한 수산물 가게. 주인 송정석 씨(42)는 한 시간 전 가게 문을 닫고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가게 2층 가정집에는 처제(36)와 그의 아들(8), 3층에는 송 씨와 부인(38), 초등학생 딸 세 명이 자고 있었다.
그 때 1층 가게건물 뒷문 근처에 묶여있던 하얀색 개(백구)가 갑자기 컹컹 짖었다. 개를 좋아하는 송 씨는 18개월 째 키우는 백구 ‘가을이’가 크게 짖는 것이 이상해 잠에서 깼다. 가을이는 몇 분 정도 계속 짖었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족보는 없지만 진돗개인 가을이는 수줍음이 많아 행인이 지나가면 잠시 짖다가 멈추는데 계속 크게 짖는 등 불안해하는 모습을 집 폐쇄회로(CC)TV로 보고 뭔가 일이 생겼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송 씨가 70㎡ 넓이의 1층 수산물가게에 내려가 보니 실내는 시커먼 연기로 자욱했다. 정신을 차려 살펴보니 수족관 배전판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배전판 옆 냉장고 위에는 스티로폼으로 된 수산물 포장상자가 가득 쌓여있었다. 불길이 조금만 더 치솟으면 스티로폼 상자로 번져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위기였다.
송 씨는 가게 뒷문 주변 에어컨 밑에 있던 소화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시커먼 연기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실패했다. 그는 5m 정도를 뛰어가 가게 앞 철제셔터를 활짝 열었다. 가게 기둥에 설치된 ‘보이는 소화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말바우시장은 상가 500여 개가 밀집된 재래시장으로 화재에 취약하다. 광주 북부소방서는 지난해 말바우시장 가게 기둥과 전봇대에 화재발생 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보이는 소화기’ 456개를 설치했다.
그가 셔터 문을 열자 시커먼 연기가 빠져나갔고 가게 기둥에 설치된 소화기가 눈에 띠었다. 그는 소화기로 수족관 배전판 불길을 잡았다. 소방차 8대와 대원 32명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자체적으로 진화가 된 상황이었다.
송 씨는 연기를 맡고 컹컹 짖어 가족들 생명을 구한 가을이에게 고기와 과자를 선물로 줬다. 가을이 못지않게 ‘보이는 소화기’도 화재진압에 큰 역할을 했다. 송 씨는 24일 “가게 주변에는 상가, 주택이 밀집돼 있어 대형 화재로 번질 위험이 있었다”며 “가을이가 짖지 않았다면 식구 7명이 피해를 입을 뻔했는데 생명을 살렸다”고 고마워했다.
이형주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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