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혼자 있으면 속절없이 눈물이 날 때가 많다. ‘이런 게 우울증이구나.’ 울적한 마음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오히려 늪처럼 빠져든다. 이 모든 게 난임(難姙) 판정을 받은 뒤부터 찾아왔다. 회사원 이모 씨(31·여) 이야기다.
2016년 4월 결혼한 이 씨는 이듬해부터 임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젊으니까 곧 생기겠지’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초조해졌다. 검사 결과 이 씨와 남편 모두 생식기능에 문제가 없었다. 결국 ‘원인불명 난임’이란 진단이 나왔다. 이 씨는 전문병원에서 두 차례 인공수정을 받았지만 임신에 실패했다. 이후 자주 절망감에 휩싸였다. 남편과의 다툼도 잦아졌다.
국내 난임 환자는 매년 20만 명이 넘는다. 초저출산 시대의 또 다른 ‘그늘’이다. 아이 낳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누구보다 간절히 아이를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늦어지는 취업과 결혼으로 임신기 부부들의 나이가 많아져 생식기능이 감퇴한 것이 주된 이유다. 이런 난임 환자의 87%가 이 씨처럼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9일 국립중앙의료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 2016년 난임부부 지원사업을 분석한 결과 난임 진단을 받는 여성은 각각 21만4588명, 22만1261명에 달했다. 부부가 자녀를 원해 1년간 임신을 시도했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의학적으로 난임이라고 정의한다.
이 중 2015년 체외수정 시술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상대로 심층 설문을 해보니 86.7%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우울감과 고립감을 경험했다.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도 26.7%에 달했다.
난임 시술을 받은 김모 씨(39)는 “시댁이나 친정에서 ‘아직 포기하면 안 된다. 아이는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 마음을 알면서도 너무 화가 난다”며 “가족에게 화를 내고 나면 후회와 함께 우울감이 더 커진다”고 토로했다. 난임 진단자를 상대로 인공수정 등 의학적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지원도 필요한 이유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일 국립중앙의료원 내에 ‘난임·우울증 상담센터’의 문을 연다. 이 센터에선 △난임 환자, 임산부를 위한 상담과 정서적 지원 △지역사회를 위한 난임·우울증 상담 교육 및 연구를 맡는다. 최안나 센터장은 “개인 검사실과 상담실, 집단요법실 등을 갖춰 난임 환자와 임신부, 산모에 대한 다양한 의학적, 심리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센터는 난임뿐 아니라 산후 우울증에 대한 지원도 병행한다. 대한정신건강센터의 산후우울증 용역연구 보고서(2015년)에 따르면 산모의 10~20%가 산후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유병률 통계가 없다. 복지부 권덕철 차관은 “중앙 센터 신설을 시작으로 인천과 대구, 전남 등 권역별로 난임·우울증 상담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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