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사회] 천안함 8주기, 사흘째 배 못 뜨자…“우리 더 보고 싶은가 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17시 01분


“우리 아들들이 부모 얼굴 더 보고 싶어 그런가 봐요…”

26일 오전 7시경 인천 옹진군 백령도 선착장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사흘째 이어진 짙은 안개 탓이었다. 바다 위에 뿌옇게 여객선이 보였다. 결국 배는 뜨지 못했다. 출항을 기다리던 50여 명이 섬으로 발길을 돌렸다. 천안함 폭침 8주기(26일)에 맞춰 24일 백령도를 찾은 유족과 생존 장병들이다.

당초 일정은 1박 2일이었다. 그러나 24일 오후부터 안개가 짙어져 추모식과 해상 위령제를 마치고도 섬을 떠나지 못했다. 출항 통제는 27일 오후에야 해제됐다. 마음이 급할 법도 했지만 가족들은 추가된 48시간동안 담담한 표정으로 추모와 위로의 정(情)을 나눴다.

26일 오후 출발할 여객선마저 발이 묶이자 유족들은 당황하는 대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뭐하냐. 애들 얼굴이나 한 번 더 보자”며 숙소를 나섰다. 소주와 사탕 과자를 챙겨 위령탑으로 향했다. 부조로 새겨진 46용사 얼굴 앞으로 소주 마흔여섯 잔이 놓였다. 추모가 끝나고 유족들은 바다를 향해 전사자의 이름을 외쳤다. 목이 쉬어 탁해진 목소리에 울음이 배어나왔다.

이번에는 세 차례나 위령탑을 찾았지만 그 때마다 똑같이 유족들의 울음이 터졌다. 고(故) 이상희 하사의 아버지이자 유족회장인 이성우 씨(57)는 “(북한의) 김영철 방남 등으로 마음고생을 해서 그런지 올해는 다들 눈물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장진선 중사의 어머니 박문자 씨(55)는 “찾아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엉엉 울었다. 장 중사는 시신을 찾지 못한 6명의 전사자 중 한 명이다. 다른 유족들이 그런 박 씨를 안고 함께 울었다.

고 문규석 원사의 어머니 유의자 씨(67)는 27일 오전 바다가 잘 보이는 작은 정자인 심청각(沈淸閣)에 올랐다. 유 씨는 천안함 폭침 후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 앞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유 씨는 “장병들이 ‘천안함 전사자 어머니 식당’이라며 자주 찾아줘 힘이 된다”며 엷게 웃었다. 유 씨의 휴대전화 케이스에는 문 원사가 생전 부대원들과 함께 조깅하는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하사의 어머니 권은옥 씨(54)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휴대전화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권 씨는 “요즘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고 홀대받는 것이 다 못난 부모 탓이 아닌가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가족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귀한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

해가 지면 아픔은 진해진다. 그 때는 술잔을 기울이며 무관심에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위로한다. 손강열(61·고 손수민 중사 아버지) 장만선(60·고 장 중사 아버지) 박봉석 씨(61·고 박보람 중사 아버지)는 26일 밤 허름한 술집을 찾았다. 손 씨는 “다른 사람과는 이렇게 술 마시고 떠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술 마시고 웃고 떠드는 게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까봐서다. 장 씨가 손 씨의 손을 꼭 잡으며 “어떻게 보면 가족보다 특별한 인연이다. 아들을 잃었는데 형님(손 씨)을 얻었다”고 말했다. 오후 11시 반 숙소로 돌아가던 손 씨가 사흘간 함께 했던 기자를 꼭 안아주며 “고맙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출항이 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렸다. 유족들은 “이제 아이들이 길을 열어주나 보다”라고 입을 모았다. 오후 6시 반 유족들을 태운 여객선은 인천항에 돌아왔다. 마침 세상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깜짝 방중(訪中) 소식으로 가득했다.

유족들은 “정부의 뜻대로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 좋은 일”이라면서도 서운함을 감추지는 못했다. 한 유족은 23일 열린 ‘제3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정부가 우리를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유족회장 이 씨는 “우리 자식들은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켰을 뿐이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데 나름대로 일조한 것 아닌가. 이렇게 외면하는 건 섭섭하다”고 말했다.

백령도=조응형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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