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 사기단’ 최고형 길 열리자… 소리없는 환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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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공소장 변경에 피해자들 “감사”

“검사의 요청에 따라 피고인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허가한다.”

23일 오전 경남 창원시 창원지법 218호 법정에서 재판장이 말했다. 방청석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술렁였다. 농아인 20여 명이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이들은 밝은 미소와 힘찬 손짓으로 기쁨을 나타냈다. 몇 명은 조용히 눈물을 글썽였다. 같은 처지의 농아인에게 거액의 투자 사기를 당한 이른바 ‘행복팀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이날 검사는 농아인 150여 명을 상대로 100억 원이 넘는 사기를 벌인 농아인 다단계 조직 ‘행복팀’의 총책 김모 씨(44)를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며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다. 앞서 검찰은 올 2월 김 씨 등을 기소한 뒤 추가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회유와 협박을 당한 정황을 확인했다. 한 농아인 피해자는 빚더미에 허덕이다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액은 기소 당시 50억 원대에서 확인된 것만 107억 원으로 늘었다.

수많은 농아인이 피눈물을 쏟았지만 현행법상 피고인들은 일반인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농아인 감경 조항’ 탓이다. 농아인은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제 아래 1953년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일반인 형량의 절반 수준이 선고된다. 당초 검찰이 적용한 사기죄는 최고 형량이 10년. 이대로라면 총책 김 씨는 최대 5년 형에 머물 수밖에 없다.

김 씨 등은 이 조항을 악용했다.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도 길어야 5년이다. 나오면 어떻게 될지 각오하라”며 피해자를 협박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조직적 사기를 저지르고 일부 피해자가 목숨을 끊기도 했는데 그에 비하면 형이 너무 적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상습사기죄 적용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최대 형량이 무기징역으로 높아져 감경 조항이 적용돼도 최대 50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행복팀은 2013년부터 4년 넘게 총책과 팀장 등 다단계 조직을 운영하며 조직적인 사기를 벌여 왔다. 같은 농아인끼리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 “투자금을 3∼5배로 불려 돌려주겠다”는 식으로 속인 뒤 돈을 가로챘다. 확인된 피해자는 154명이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공소장 변경 결정에 감사의 뜻을 밝혔다.

김 씨의 선고 공판은 다음 달 열린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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