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낙태죄 폐지 청원 답변 “대립구도 넘어 사회적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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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1월 26일 15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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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사진=청와대
청와대가 23만여 명이 동참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변을 내놨다.

지난 9월30일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과 및 도입을 부탁드린다’는 제목으로 등록된 청원은 게시후 한 달 만에 약 23만여 명의 추천을 받았다.

이에 26일 조국 민정수석은 청와대 뉴스룸과 페이스북 등을 통해 “대립구도를 넘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말하며 “임실중절(낙태) 실태조사를 2018년에 재개하기로 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조 수석은 “낙태라는 용어자체가 부정적 함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낙태란 단어대신에 모자보호법이 사용하고 있는 임신중절을 사용하겠다”며 말을 열었다.

조 수석은 “우리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임신중절은 처벌된다. 임실중절을 행한 여성은 물론 그것을 시술한 의사도 처벌된다. 그런데 1973년 모자보호법이 제정된 후 아주 예외적 조건에 한에서 임신중절을 허용되고 있다. 예컨대 부모가 우생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흠결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서 임신된 경우. 이런 경우에 한에서만 임신중절이 허용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관련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며 “지난 2000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예외적 허용 조항도 아예 삭제해서 임신중절을 완전히 금지하자는 입법 청원도 있었다. 2007년에는 정부가 낙태를 둘러싼 법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법 정비 방안을 연구하고 공청회를 개최하여 사회적 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당시에는 낙태 예외조항에 본인 동의사유와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고 배우자의 동의조항과 우생학적 윤리적 조항을 삭제하는 등이 논의가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리고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대 합헌이 4:4로 팽팽했다”며 “합헌의견을 보면 사익인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크지 않고 태아도 성장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써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하여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했다. 반면 위헌 의견은 임신초기 자발적 임신중절까지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둘 중 하나만을 택해야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둘 다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임신중절이 실제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 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아야한다”라고 말했다.

조 수석에 따르면 2010년 추정 임신중절 건수는 1만6900여 건이나 의료기관에서 행해진 합법적 인공 임신중절 시술 건수는 1만800여건으로 합법에 의한 영역은 6%에 불과하다. 또 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미혼 여성보다 기혼 여성이 더 많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별도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임실중절 사유는 ‘원치 않아서’라는 이유가 가장 많다. ‘미혼이라서’,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어서’ 등의 이유도 상당하다.

조 수석은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다. 임신중절 시술로 인해서 생명권이 박탈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제는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허용’ 이런 식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OECD 35개국 중에 본인 요청에 의해서 인공 임신중절이 가능한 국가는 25개 국가다. 예외적으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는 4개국까지 합치면 OECD 회원국 중 80%인 29개국에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며 “다만 본인 요청에 의해서 중절이 가능한 경우에도 통상 12주 이내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고 7개국은 사전 상담을 의무화하고 있다. 상담 이후 시술까지 2~8일까지 숙려기간을 두어서 무분별한 시술을 방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조 수석은 “보건학자 김승섭 고려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2006년 세계보건기구 연구를 인용해서 매년 전 세계에서 2000만 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임신 중절 수술을 받고 그중 6만8000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고 말하며 “다음 같은 세 가지 경우를 다같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첫째, 교제한 남성과 최종적으로 헤어진 후에 임신을 발견한 경우, 둘째 별거 또는 이혼 소송상태에서 법적인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발견한 경우, 셋째 실직이나 투병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 양육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하에서 임신했음을 발견 했을 경우. 이런 세 가지 경우 현재 임신중절을 하게 되면 그것은 범죄다”라고 말했다.

이어 “근래 프란체스코 교황은 임신중절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며 “이번 청원을 계기로 우리 사회도 새로운 균형점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번 청원을 계기로 정부는 법제도 현황과 논점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그리고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여성가족비서관실, 국민소통수석실 담당자가 세 차례에 걸쳐서 쟁점을 검토하고 토론했다”라고 말했다.

조 수석은 “당장 2010년 이후 실시되지 않은 임실중절 실태조사부터 2018년에는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임실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한번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사건을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마련되고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실제 법 개정을 담당하는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연유산 유도약의 합법화 여부도 이런 사회적, 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함께 정부차원에서 임신중절 관련 보완대책도 다양하게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먼저 청소년 피임교육을 보다 체계화하고 내년에 여성가족부 산하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가능한 법부터 시범적으로 전문 상담을 실시하겠다”며 “이 과정에서 임신중절 관련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현장 정보가 쌓여나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대통령께서 이미 지시한 바처럼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적극적 경제적 지원을 모색하고 있다. 입양문화의 활성화도 함께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이상의 것은 남성은 물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비혼이든 경제적 취약층이든 모든 부모에게 출산이 기쁨이 되고 아이에게 축복이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 국가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겠다”라고 말했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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