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세기말 키즈’ 1999년생 토끼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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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 서고 비행기가 추락하고, 원자로가 녹아내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두 자리만 읽도록 설계된 컴퓨터가 1900년 1월 1일과 2000년 1월 1일을 같은 날로 인식할 것이고 그로 인한 컴퓨터 장애로 대혼란이 야기된다는 겁니다. 1999년에 이런 공포가 극에 달했고 당시 사람들은 이를 ‘Y2K 문제’ 또는 ‘밀레니엄 버그’라 불렀습니다. 1999년에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허무주의에 빠지고 내세와 윤회에 관심을 갖는가 하면 사이비 종교가 극성을 부리는 등 세기말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토끼해인 1999년에 태어난 세기말 키즈 61만4000여 명이 올해 고3입니다. 이들은 지난 한 주를 혼란 속에서 지냈습니다. 경북 포항 지진으로 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낭패감에 소리를 지르고 우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공부와 생체리듬을 16일에 딱 맞춰놓은 학생들의 복잡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은 생리 주기를 조절하기 위해 약까지 복용하며 준비했는데 시험 연기로 크게 동요했습니다. 그동안 공부했던 책들을 모두 버린 학생들의 당혹감도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포항의 수험생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오죽할까요.

다행히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아이들은 얼굴에 웃음기를 되찾았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상황을 힘들어했지만 곧 포항의 사정을 이해하는 포용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9년생의 학창 시절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잦은 교육과정 개편의 영향을 직접 받아 혼란을 겪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신종플루의 유행으로, 중3 때는 세월호 참사로 여러 학교 행사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고1 때는 메르스 사태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으며 고3 때는 탄핵 정국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공부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추석 황금연휴를 즐기지 못했으며 지진으로 수능 연기까지 경험했습니다.

토끼의 이미지는 다양합니다.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에서는 재능만 믿고 게으름을 피우는 동물로 그려집니다. 달 속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 설화도 있습니다. 토끼는 감수성이 뛰어나고 영민하며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음양오행상 토끼띠의 시(묘시·卯時)는 새벽이고, 방위는 정동(正東), 계절은 초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착한 천품을 타고난 토끼띠 생은 이상주의자이다. …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간단히 뛰어넘으며 뛰어난 탄력으로 재난으로부터 벗어난다”고 쓰여 있습니다. 어둠과 추위에서 벗어나 만물을 생동시키는 토끼의 사주처럼 1999년생 토끼띠는 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겁니다. 부디 내일 아침 고사장에서 토끼의 재주와 영민함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그들이 태어난 해에 ‘타임’지가 뽑은 20세기 인류 유산 대중음악 부문 1위는 비틀스였습니다. 비틀스의 노랫말로 수험생들의 마음이 따뜻해지면 좋겠습니다. “구름 덮인 밤일지라도 내일 날이 밝을 때까지 여전히 날 밝혀줄 빛은 있다네. let it be.”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세기말 키즈 1999년생#1999년생 토끼띠#1999년생 수험생#구름 덮인 밤일지라도 내일 날이 밝을 때까지 여전히 날 밝혀줄 빛은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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