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에 남아도는 전북도 농어촌 공공시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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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 청사-문화체육시설 등… “일단 짓고 보자” 경쟁적으로 신축
박물관-미술관 등 ‘돈 먹는 하마’로

농어촌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가 줄고 있는데도 청사나 문화체육시설 등을 경쟁적으로 신축하면서 시설 건축비와 운영비용이 자치단체 재정을 압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체 수입으로는 공무원 월급도 못 주는 열악한 재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민선 이후 눈에 보이는 실적을 의식해 ‘일단 짓고 보자’는 추세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성중 의원(자유한국당·서울 서초을)이 내놓은 행정안전부 국감 자료에 따르면 전북 익산 예술의전당은 지난해 26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익산시립 모현도서관은 20억여 원, 보석박물관 14억여 원, 솜리문화예술회관 6억여 원, 실내체육관은 1억여 원의 적자가 났다. 이들 적자액만 합해도 70억 원에 달했다. 남원시 백두대간생태교육장과 춘향골체육관도 각각 3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다. 김제시의 대표적 문화시설인 문화예술회관 하나만도 적자액이 7억 원에 육박했다.

익산·김제·남원시는 모두 행정안전부가 꼽은 ‘축소도시’란 공통점이 있다. 축소도시는 인구 감소세가 뚜렷해 빈집과 빈 상가가 늘어나고 공공시설이 남아도는 지역을 말한다. 익산시는 광주와 전주에 이은 호남 3대 도시란 명성이 무색하게 인구가 30만 명 선에 가까스로 턱걸이를 하고 있다.

1970년대 20만 명을 넘던 김제시는 현재 8만 명대로 완주군보다 주민 수가 적다. 남원시도 1975년 17만 명대를 정점으로 현재 8만 명을 유지하기 힘든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들 시가 올해 착공했거나 내년에 착공할 예정인 공공시설 신·증축 사업은 6건으로, 사업비는 185억 원대로 추산됐다. 기존 시설도 적자가 쌓여가는 상황에서 대규모 신축에 나서는 것이다.

전북 동부 산악지역 자치단체 형편은 더욱 심각하다. 주민이 2만3000여 명인 장수군에는 공공건물이 268동이나 된다. 자치단체 청사나 문화체육시설,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사료공장까지 망라한 것이다. 이들 공공건물을 관리하는 인력만 136명으로, 인건비를 포함해 운영비와 유지·관리비만 연간 65억9600만 원이다. 이 액수는 장수군의 연간 자주재원(지방세+세외수입) 197억2300만 원의 33.4%를 차지한다. 자치단체가 100원을 벌어 33원을 건물 운영·관리비로 쓰는 셈이다.

주민이 2만5000여 명인 무주군도 공공건물 133동을 유지·관리하는 데만 전체 자주재원 333억 원의 33%인 110억 원을 사용한다. 전북도내 14개 시군 가운데 공공건물 운영·유지·관리비가 자주재원의 15%를 넘는 곳이 6개 시군이나 된다.

박 의원은 “휑한 도시에 공공시설이라도 지어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좋겠지만 운영비조차 못 건질 정도로 적자폭이 커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무작정 공공시설을 늘리기에 앞서 남아도는 유휴시설부터 어떻게 제대로 활용할 것인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북도의회 장학수 의원(정읍)은 “민선 단체장들의 선심행정으로 무분별하게 공공건축물을 신축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재정을 압박하고 있다”며 “재정자립도와 예산액, 주민 수 등을 감안한 지역별 기준과 재정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정부나 광역단체도 신규사업 투융자 심사에 이를 활용해 철저한 심사와 관리감독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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