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 쓰레기 집에 남겨진 초등생 남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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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한 임대주택에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가득 쌓여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집주인은 술에 의존하며 
생활했으며 집 관리에 아예 손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청소를 마친 뒤 집에서 나온 쓰레기만 5t에 달했다. 수원시 제공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한 임대주택에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가득 쌓여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집주인은 술에 의존하며 생활했으며 집 관리에 아예 손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청소를 마친 뒤 집에서 나온 쓰레기만 5t에 달했다. 수원시 제공
12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임대주택에 사는 A 군(9·초등 3년)과 B 양(8·초등 2년) 남매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초인종을 눌렀다. 한동안 기다렸지만 집 안에 인기척은 없었다. 문을 두드리고 엄마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한참을 서성거리던 남매는 주말마다 자신들을 돌봐주는 외할아버지(56)에게 연락했다. 예비 열쇠를 가지고 달려온 외할아버지는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집 안이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현관부터 방, 거실, 화장실까지 60m²(약 18평) 남짓한 집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남매의 엄마 C 씨(32)는 평소 자신의 아버지가 집 안에 들어오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외할아버지는 이날 처음으로 쓰레기로 가득 찬 집 안을 봤다. 거실에는 컵라면 용기, 비닐쓰레기, 과자봉지, 옷가지 등이 뒤섞여 있었다. 화장실에는 사용한 휴지가 한쪽 벽에 천장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밥솥 안에는 곰팡이가 기승을 부렸고, 싱크대에서는 말라붙은 음식물 쓰레기가 악취를 뿜었다. 빈 맥주 페트병 수십 개와 소주병 등도 널려 있었다. 지난해 1월 입주한 C 씨가 술에 의존하며 집 관리는 아예 손을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외할아버지 요청으로 현장을 찾은 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쓰레기로 온 집 안이 뒤덮여 있고 악취가 코를 찔러 어떻게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살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센터는 20일 관할 보건소 직원 및 봉사단원들과 함께 대청소를 하고 장판과 벽지 등을 교체했다. 이때 나온 쓰레기만 5t에 이르렀다. 남매는 현재 외할아버지가 보호하고 있다.

수원시에 따르면 4년 전 남편과 이혼한 C 씨는 부산에서 살다가 3년 전 수원으로 이주해 여인숙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아이들과 노숙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파악한 수원시가 위기가정으로 분류했고 보증금 340만 원, 월세 13만 원짜리 지금의 임대주택에 살도록 했다. 보증금은 친정 부모로부터 받았고 월세는 시가 제공하는 주거급여로 해결했다. 부족한 생활비는 친정 부모가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센터는 이 가족을 은둔형 모자(母子)가정으로 보고 여러 차례 방문상담을 시도했으나 C 씨가 완강히 거부해 이뤄지지 못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초 A 군이 자주 결석한다는 학교 얘기를 듣고 C 씨에게 주의를 촉구한 뒤부터는 다행히 아이들이 학교에 잘 다녔고 멍이나 외상 같은 아동학대 흔적은 없었다”며 “이후 아이들을 데리고 치과나 안과에 가려고 했지만 C 씨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을 나갔던 C 씨는 15일 만인 27일 집으로 돌아왔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옷차림에 뭔가가 두려운 듯 옥상에 숨어 있다가 주민들에게 발견됐다. 경찰관이 전후 사정을 물었지만 횡설수설하는 답변만 거듭했다. 그러는 중에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C 씨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진료를 받게 한 뒤 정신병원에 입원시킬지 결정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C 씨가 술을 가까이하면서 우울증 증상을 보이며 쓰레기를 치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민센터는 C 씨 재정상태를 파악해 체납 공과금을 지원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의뢰해 남매도 정신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남매는 C 씨에 대한 애정이 깊고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쓰레기 집#초등생 남매#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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