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부산 다방 여종업원 살해
부산경찰, 장기미제수사팀 꾸려
SNS에 얼굴 공개… “지인 닮아” 제보
범인 구속… 공범 2명 공소시효 끝나
2002년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하고 달아난 범인이 15년 만에 붙잡혔다. 경찰은 시민 제보를 토대로 통화기록 약 1만5000건을 분석하는 등 끈질긴 수사 끝에 결실을 거뒀다.
부산지방경찰청 미제(未濟)사건전담수사팀은 31일 살인 등의 혐의로 양모 씨(41·범행 당시 26세)를 구속했다. 피살자의 은행 적금 인출을 도운 공범 2명도 붙잡았지만 사문서 위조 등 혐의의 공소시효가 지나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양 씨는 2002년 5월 21일 오후 10시경 부산 사상구의 다방에서 퇴근하던 A 씨(당시 21세·여)를 납치해 흉기로 살해한 뒤 시신을 마대(麻袋)에 담아 강서구 앞바다에 버린 혐의다. 양 씨는 다음 날 은행에서 A 씨 통장의 296만 원을 인출하고, 살해 21일 뒤에는 이모 씨(41·여) 등을 꾀어 A 씨의 적금 500만 원을 해지해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A 씨의 시신은 행방불명된 지 10일 만에 발견됐다. 경찰은 양 씨가 이 씨 등과 A 씨의 통장에서 돈을 찾는 은행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했지만 얼굴 말고는 이름 등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A 씨 주변에 의심스러운 사람도, 지문을 비롯한 다른 단서도 없었다. 미궁에 빠진 경찰은 공개수배까지 하며 2년간 양 씨의 뒤를 쫓았지만 허사였다.
영구 미제가 될 뻔한 사건이 빛을 본 것은 ‘태완이법’ 덕분이었다. 2015년 7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태완이법)이 마련되자 부산 경찰은 장기미제사건전담수사팀을 꾸렸다. 미제 사건 26건 중 유일하게 피의자 얼굴이 확보된 이 사건 해결이 최우선 목표였다.
경찰은 지난해 2월 페이스북 등을 통해 양 씨 등의 얼굴을 공개하며 제보를 요청했다. 조회 수가 232만 건을 넘은 끝에 한 달 뒤 “이 씨가 지인과 많이 닮았다”는 전화가 왔다. 경찰은 이 씨를 찾아내 추궁했고 “양 씨가 수고비를 준다고 해서 은행에 간 건 맞지만 그때 처음 만났고 이후 연락한 적은 없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15년 전 수사할 때 확보한 휴대전화 통화기록 1만5000여 건을 다시 꺼냈다. 양 씨 등이 A 씨 적금을 인출하기 전후 한 시간가량 은행 주변 기지국에 기록된 시민들의 통화 기록이었다. 이 기록에서 이 씨와 통화한 단 하나의 휴대전화 번호가 양 씨의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이후 1년 넘게 그의 주변을 치밀하게 탐문하며 올가미를 조여 갔다. 약 50명을 조사한 결과 15년 전 양 씨가 A 씨의 시신을 운반할 때 마대를 함께 들었다는 옛 동거인과 양 씨에게서 구매한 차량에서 혈흔을 봤다는 진술 등을 확보했다.
양 씨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 의뢰해 15년 전 은행 CCTV에 찍힌 인물과 양 씨가 동일인일 확률이 매우 높고, 당시 은행 전표에 기록된 필적과 양 씨의 현재 필적이 거의 동일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양 씨는 2003년 부녀자 강도강간 등으로 10년간 복역하고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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