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성동구 마장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면생리대 수업교실’에 참여한 구민들이 만들고 있는 면생리대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깔창 생리대’ 기사를 보고 너무 안타까웠어요. 면생리대를 만들어 쓸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좋은 수업이 있다고 해서 왔어요.”
8일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열린 ‘면생리대 만들기 수업’에 참석한 강유진 양(15)이 “내가 만든 제품을 친구들이 잘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느질은 삐뚤빼뚤 서툴렀지만 누구보다 진지했다. 자녀와 함께 온 임모 씨(40·여)도 “같은 여성으로 ‘그 사건’ 이후 생리대 살 여유도 없는 청소년을 도울 방법이 있을지를 늘 고민했다”고 했다. 주말이고 궂은 날씨였음에도 이날 수업에는 10여 명이 찾았다.
○ 깔창 생리대 사건, 그 후 1년
면생리대 수업 및 차상위계층 청소년 지원은 3월 마장동 주민자치특성화 사업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5월 말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으로 대신한다는 여중생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그런 안타까운 일이 없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면생리대가 불편해서 쓸모가 있겠느냐’ ‘수업 내용이 낯부끄럽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생리대가 없어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은 주민자치 심사위원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면생리대는 기존 생리대에 함유된 화학물질이 들어있지 않은 데다 세탁해서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인 효과도 크다.
보건복지부는 생계급여 수급자와 의료급여 수급자 등에게만 생리대를 지원한다. 이 때문에 차상위계층 청소년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마장동 주민자치회와 서울시립 청소년건강센터가 이들을 돕기로 한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면생리대 제작 수업은 4회 진행하고 참석자들이 만든 면생리대의 절반은 관내 차상위계층 청소년들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서울시립 청소년건강센터도 동참해 마장동 차상위계층 청소년 40여 명에게 각각 1년 치 일회용 유기농생리대를 선물하기로 했다.
○ 삼삼오오 모은 힘
주민과 공무원들도 적극 참여했다. 이경은 주민자치회 주무관(38·여)은 “마장동 주민자치회가 ‘수수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니 주민들과 직접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면생리대 사업을 하는 옥혜림 ‘달이슬’ 대표(37)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옥 대표는 아이들이 만들기 쉬운 면생리대 제조방법과 재료 구입처 등을 소개했다. 유기농 원단도 무료로 기증했다. 옥 대표는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면생리대를 기부하고 제작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동대문 원단 가게 사장님도 소식을 듣고 “좋은 일에 참여하고 싶다”며 선뜻 천을 나눠줬다. 안다성 소공인특화지원센터 재단(裁斷)실장(51)은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깔창 생리대’ 기사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모든 재단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나섰다. 수수공방 회원들은 직접 면생리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면생리대 지원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삼병 마장동 주민자치회장(55)은 “생전 생리대를 보기는커녕 입에 담아보지도 않았을 남성들도 청소년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며 “이 모든 과정이 진정한 ‘협치’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 이후 신청을 받아 기초생활수급자 9200여 명에게 유기농 생리대를 지원했다. 예민한 청소년인 만큼 일반 택배인 것처럼 포장해 개개인의 집으로 전달했다. 또 긴급할 때 찾아가 생리대 두세 개를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소녀돌봄 약국’ 25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나 가출 청소년 돌봄기관은 월 1만 원 상당의 생리대를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민한 시기임을 최대한 배려해 관련 정책을 다양하게 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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