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발목잡는 ‘액티브X’… PC 없으면 체류연장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컴퓨터(PC) 없으면 체류 연장도 못 합니까?”

결혼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일본인 여성 A 씨(32)는 국내 체류 기간을 연장하려고 4월 초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들러 3시간이나 기다렸지만 접수창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온라인으로 미리 방문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위해 3개월짜리 단기비자(결혼 이민 비자)로 입국한 A 씨는 체류 기한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아 초조했다.

스마트폰을 통한 예약은 불가능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홈페이지에 접속하려면 ‘액티브X’라는 추가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는 PC만 이용해야 했다. 남편의 도움으로 방문 예약을 했지만 예약이 밀린 탓에 한 달 뒤에야 다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 A 씨는 “체류 연장을 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온라인 예약 절차 때문에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10만 명에 이르는 국내거주(등록) 외국인이 국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디지털 행정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 접근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주의 행정에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호칭도 빛이 바래고 있다.

법무부는 디지털 행정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2월부터 수도권과 부산 지역 출입국관리사무소 총 7곳에 온라인 방문 예약을 의무화했다. 2008년부터 방문 예약 제도를 실시했지만, 2015년까지 이용률이 5%에도 미치지 않자 활용도를 늘리기 위해 해당 제도를 의무화한 것. 외국인이 많은 지역에서 온라인 예약이 활성화되면 민원인의 대기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워낙 국내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예약 신청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보고 전화 예약도 따로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으로 방문 예약을 하려면 보안과 인증 프로그램을 설치해주는 액티브X를 필수로 내려받아야 한다. 액티브X를 내려받을 수 있는 인터넷익스플로러(IE) 환경에서만 접속이 가능해 PC가 없는 외국인은 접속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 중에서도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에겐 특히 문제다.

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70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고려인이 체류 연장을 하러 왔을 때에도 온라인으로 예약하라고 하고 돌려보냈다”며 “컴퓨터도 없고 사용법도 모른다고 했지만 우리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스마트폰으로도 방문 예약이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려고 했으나, 관련 예산 확보가 어려워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온라인으로만 예약을 단일화하는 행정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민원인 눈높이를 생각하지 않은 행정 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액티브x#외국인#체류연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