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학교행사 참여’ 휴가도 노동법으로 보장

해외 선진국들은
獨, 공교육 참여도 낮으면 학부모로서의 권리 사실상 제한

미국 뉴욕 공립초등학교 1학년생인 버핀 아이(7·여)는 하교 후 집에서 숙제를 할 때마다 엄마나 아빠를 찾는다. 부모의 확인 서명이 필요하거나 함께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밸런타인데이(14일)가 포함된 주(13∼17일)의 주간 숙제는 ‘친절 체크 리스트 만들기’였다. 친구 칭찬해주기와 집안일 돕기 같은 착한 일을 최대한 많이 해서 그 실천 목록을 부모와 함께 작성해 담임교사에게 제출했다.

고교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전학 간 한국인 J 씨(20·여·대학생)는 “고교 졸업반(시니어) 때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학생 중심의 프롬(prom) 파티보다 학부모들이 모든 걸 기획하고 준비한 ‘시니어 나이트 파티’가 더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시니어 나이트 파티는 학부모들이 기금 모금, 재능 기부, 자원봉사 등으로 마련한 졸업 축하 행사다. J 씨는 “엄마 아빠들이 퇴근 후 학교로 와서 실내체육관 절반을 대형 천막으로 가려놓고 한 달 넘게 ‘깜짝(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하는 모습은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고 전했다.

미국 학부모들의 교육 참여 방식은 이처럼 초등학생 숙제 도와주기에서부터 고교 축제 준비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비영리단체인 ‘공교육센터(CPE)’는 “학부모 참여는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결석률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도 키운다”고 평가했다. 학생-학부모-학교 모두에 ‘윈윈’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직업이 있는 학부모들도 자녀 교육을 위해 학교 행사나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상당수의 주에서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위한 휴가’를 노동법으로 보장한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 때문에 근로계약 등에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다.

독일은 학부모 참여 제도가 학부모의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서울대 학부모정책연구센터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에선 자녀의 진학과 관련해 부모와 교사의 의견이 엇갈릴 때 학부모 의견이 적극 반영되게 하려면 ‘그동안 상담교사와 많은 논의를 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평소 자녀의 학습 성취와 관련해 담당 교사와 꾸준히 상담하는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학부모로서의 ‘권리’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도록 사실상 제도화해 놓은 셈이다.

일본은 ‘공교육에서 학부모는 참여자라기보다 일종의 고객이란 인식’이 강한 편이다. 학교 지원 자원봉사 활동이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려는 인식은 낮은 반면에 자녀의 학교생활 정보나 상담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욕구가 훨씬 큰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부모 참여 교육을 확대하거나 제도화하기 전에 면밀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자녀의 한국어 학습을 위해 서울에 체류했던 한 재미동포는 초등학생 딸을 한 학기 동안 한국의 공립학교에 보냈다가 미국과 너무 다른 문화 때문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딸이 “수업 시간에 몇몇 남자아이가 너무 떠들고 장난치는데도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말만 하고 그 아이들을 제대로 혼내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하소연했다는 것. 이 동포가 학교를 찾아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담임교사는 “그런 남학생을 교실 밖 복도에 서 있게 한 적이 있는데 다음 날 학부모가 찾아와 ‘당신(교사)이 뭔데, 내 아이의 학습권을 방해하느냐’며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 일이 재연될까 봐 두려워서 ‘수업 방해 학생’을 사실상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동포는 “미국 학교라면 수업 진행을 상습적으로 방해한 학생은 정학당하고, (소동을 피운) 그 학부모는 경찰에 체포됐을 것”이라며 “학부모 참여 교육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서라도 학교와 교사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존중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