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유전질환 정체 밝히고 말거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6일 03시 00분


생물학 마니아들, 원인 모를 질병 앓는 아이 위해 뭉쳐

RG코리아에서 유전체 서열 분석 및 보고서 작성을 맡고 있는 박지혜 서울대 의대 바이오정보의학연구실 박사과정생(왼쪽)과 최성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전문연구요원. 신수빈 기자 sbshin@donga.com
RG코리아에서 유전체 서열 분석 및 보고서 작성을 맡고 있는 박지혜 서울대 의대 바이오정보의학연구실 박사과정생(왼쪽)과 최성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전문연구요원. 신수빈 기자 sbshin@donga.com
 수현이(가명)는 올해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다. 한창 신나게 뛰어놀 때지만 혼자서는 걸을 수 없다. 말도 할 수 없다. 쥐어짜듯 소리를 지르는 게 그나마 수현이가 할 수 있는 의사 표현 방식이다.

 가족들은 더 고통스럽다. 수현이 엄마와 외할머니도 유사한 증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애가 왜 생겼는지, 어느 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의료진도 정확한 원인이나 치료법을 몰라 ‘진단 불가’ 판정을 내렸다. 3대에 걸쳐 장애가 나타나니 유전성 질환으로 짐작할 뿐이다. 현재로서는 재활치료에 매달릴 뿐이다.

 ‘생물학 덕후(마니아)’ 모임 ‘RG코리아(Rare genomics Korea)’가 팔을 걷어붙였다. RG코리아는 최성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전문연구요원(29), 오시혁 국군춘천병원 신경외과 과장(32), 김종규 독일 막스플랑크 분자유전학연구소 및 베를린자유대 수학 및 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생(33) 등 3명이 희귀질환자들을 돕기 위해 2014년 5월 결성한 비영리법인이다.

 모임은 우연히 시작됐다. 2014년 유튜브에서 미국 비영리법인 레어지노믹스(RG) 지미 린 회장의 강연을 본 게 계기였다. 미국 RG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모금한 돈으로 희귀질환자들의 유전자를 진단하고 원인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RG코리아는 지난해 12월 17일, 크라우드펀딩 웹사이트 ‘쉐어앤캐어’에 ‘수현이가 편히 걸을 수만 있다면’이란 제목의 프로젝트를 등록했다. 프로젝트는 등록된 지 5일 만에 ‘공유’ 1079개, ‘좋아요’ 1만420개를 받으며 목표 모금액 320만 원을 채웠다.

 설립 초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레인(RAIN)’이란 팀을 꾸려 청년 창업 공모전에 지원하고 미국 RG에 자문도 했다. 이후 인원도 10명으로 늘었고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 최무림 서울대 의대 교수 등은 자문단에 합류했다.

 유전자 진단은 녹록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직접 업체에 유전체 전체 서열 분석을 맡길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불법이었다.

 RG코리아는 적법한 승인 절차를 거쳐 희귀질환자의 유전체 서열을 분석하고 의료진에 참고자료로 제시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유전체 서열을 읽어 내는 분석은 마크로젠과 테라젠이텍스라는 두 전문 업체에서 맡았다.

 RG코리아 박지혜 서울대 의대 바이오정보의학연구실 박사과정생과 최 대표는 업체에서 분석한 서열이 어떤 질환과 관련돼 있는지 찾아내는 분석을 맡았다. 분석 결과 보고서를 전달받은 의료진은 희귀질환자에게 추가 검사를 진행한 뒤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 RG코리아는 첫 케이스로 수현이의 유전체를 분석하기 위해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1월 중 승인 결과가 발표되면 곧바로 분석을 시작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수현이를 비롯한 3명의 희귀질환자에 대한 보고서를 완료하는 게 목표다.

신수빈 동아사이언스 기자 sb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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