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뭐하나… 단톡방 족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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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10명중 7명 “시도 때도 없이 업무지시 받아 스트레스”
고용부, 근로자 1000명 실태조사
“근무혁신 기본은 저녁이 있는 삶”… 55%가 ‘정시 퇴근’ 첫손 꼽아

 “사장님이 7시에 나오시니까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원 A 씨는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규상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누구도 이런 지시를 하진 않았지만 사장 출근 시점에 맞추다 보니 정해진 근무시간보다 2시간 일찍 나오는 게 관행이 됐다.

 반면 퇴근은 대중없다. 오후 8시 정도면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결국 최소한 하루 4시간씩 초과근로를 하지만 수당을 신청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 퇴근해도 퇴근하지 않은 날이 많다. 팀장은 ‘단톡(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업무 지시를 내린다. 내일 해도 될 업무 지시를 잠들기 직전 전화로 받은 적도 있다. A 씨는 “노조의 보호를 받는 생산직은 퇴근 이후에는 전혀 전화를 받지도 않으며 초과근로 수당도 칼같이 받아간다”며 “하지만 사무직이 그렇게 했다가는 ‘미친놈’ 소리 들으며 해고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근로자 10명 중 7명은 퇴근 후 휴대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업무 연락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과 근로자들은 ‘정시 퇴근’이 가장 시급히 도입돼야 할 근무 혁신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관계 부처와 경제5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4차 일 가정 양립 민관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1000명 가운데 740명(74%)이 퇴근 후 업무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급한 업무 처리로 인한 연락은 42.2%에 불과했다. 55.4%는 관행화된 장시간 근로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습관적으로 이뤄진 연락이었다고 답했다.

 이런 관행을 없애려고 정부 부처의 한 국장급 간부는 ‘단톡방 파괴’ 운동을 하고 있다. 근무시간에만 단톡방을 운영한 뒤 오후 6시 이후에는 단톡방을 모두 나가게 하고, 급한 업무가 있을 때는 개별적으로만 연락을 취하는 것이다. 단톡방은 다음 날 오전 9시에 다시 만들어진다. 이 간부는 “나도 상급자와 선배들이 만든 단톡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며 “우리 후배들은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끔 나부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이 가장 원하는 근무 혁신은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기업의 52.8%, 근로자의 55.2%가 ‘정시 퇴근’을 가장 필요한 혁신으로 꼽았다. 하지만 가장 실천되지 않는 항목(40.5%)도 정시 퇴근이었다. 많은 기업이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실제 일부 기업도 정시 퇴근을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지키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이 때문에 근로자 응답자의 절반가량(50.2%)은 근로시간 이후 2시간 이내에만 퇴근하면 야근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2시간 정도의 초과근로에 대해서는 아무 보상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근로자들이 많은 것으로 이 역시 일상화된 장시간 근로의 단면이라는 것이 고용부의 분석이다.

 고영선 고용부 차관은 “내년에는 정시 퇴근은 물론이고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확산 정착될 수 있도록 민관의 역량을 결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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