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제주 대표하는 ‘새 박사’… “비행술 등 새들의 치열한 삶에 경외감 느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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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김완병 학예연구사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특별전시실을 둘러보며 ‘연외천 원류를 찾아서’ 특별전 마무리 작업을 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새 박사인 김 연구사는 “새들과 함께 생태계를 지탱하는 공존의 지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특별전시실을 둘러보며 ‘연외천 원류를 찾아서’ 특별전 마무리 작업을 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새 박사인 김 연구사는 “새들과 함께 생태계를 지탱하는 공존의 지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9일 오후 제주시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특별전시실. ‘연외천의 원류를 찾아서’를 주제로 한 특별전 개막을 하루 앞두고 마무리 점검을 하는 김완병 학예연구사(48)의 손길 및 발길이 분주하다.

“연외천은 서귀포시의 유명 관광지인 천지연폭포를 이루는 하천으로 쌀오름(오름은 작은 화산체를 뜻하는 제주어) 북서쪽 해발 600m에서 발원해 서홍동을 지나 서귀포항으로 흐릅니다. 여름철 휴식처인 솜반내를 비롯해 걸매생태공원이 연외천에 속하는 등 서귀포 지역 인문, 자연환경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김 연구사는 133번째 특별전 소재로 연외천을 선택한 이유를 속사포 같은 설명으로 이어갔다. 지질부터 식물, 곤충, 새, 선사유적, 문화자원 등에서 막힘이 없었다. 연외천 특별전은 광령천, 중문천, 창고천 등에 이은 하천시리즈 중 하나로 그가 직접 기획했다. 만물박사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방면에 능통했는데, 실제 그의 전공 분야는 ‘새’다. 제주 해안에 서식하는 텃새인 ‘흑로의 번식 생태와 관리 방안’을 주제로 2010년 제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제주를 대표하는 ‘새 박사’다.

○ 신비한 새 생태

“대학교 2년 생물교육전공 시절 현장조사를 자주 나갔는데 그때 새를 처음으로 눈앞에서 확인했습니다. 보들보들한 깃털, 가느다란 다리, 날카로운 부리가 너무나 신기했어요. ‘이런 새들은 어떻게 생활하나’란 궁금증이 커지면서 평생의 업(業)이 됐습니다.(웃음)”

 주중, 주말이 없었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양어장, 한경면 용수저수지,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포 내수면 등 철새가 오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제주지역 새 연구의 선구자인 고 박행신 제주대 교수를 좇아 산, 들, 바다를 누볐다. 새벽에 나가 저녁때까지 새를 관찰하고 밤늦게까지 자료를 정리하는 ‘성실함’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 1996년 석사학위를 받은 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그의 활동 반경과 연구 주제는 새뿐만 아니라 육상생물 전반으로 확대됐다.

 서귀포 3개 무인도의 하계조류상, 월동 청둥오리 행동구분, 연안에 서식하는 조류현황, 저어새 도래현황과 보호방안 연구, 습지 조류현황, 월동 조류현황 등의 연구보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제주에서 이뤄지는 학술조사, 연구보고서 발간에서 새 분야를 도맡았다. 제주도 문화재전문위원,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 등의 경력을 쌓았고 자연해설사, 숲해설사 등을 양성하는 강사 활동도 한다.

“새 연구를 하던 초기에는 다친 새를 안락사시키는 일이 잦았습니다. 손써 볼 장비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죠. 그러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안민창 원장과 ‘한 번 살려서 방사해 보자’고 의기투합했어요. 치료, 재활, 방사에 이르기까지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먹이를 만들기 위해 시장을 뒤져 구입한 미꾸라지를 갈아주기도 했습니다. 여러 고비를 넘기고 방사할 때는 새로운 생명을 준 것처럼 뿌듯했어요.”

 새를 살려 보내는 과정에서 김 연구사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날개를 다친 ‘슴새’를 방사하면서 실패를 거듭했다. 슴새를 공중으로 던졌는데도 날 줄을 몰랐다. 그러다 슴새가 해안가 절벽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면서 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높은 모래 언덕에서 날려 보내는 데 성공했다. 야간에 활동하는 소쩍새는 밤에 방사해야 제대로 날아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생태, 습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김 연구사는 이런 경험 등을 쌓으며 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를 탄생시키는 산파역을 했다.

○공생적 관계를 위한 나침반


“새를 바라보면서도 그가 갖는 생태적인 중요성을 간과하는 듯합니다. 새는 식량, 관광, 애완, 농업, 문학적 및 예술적 소재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새와 알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도 사람에게 중요한 식용자원 중 하나고 매사냥 같은 수렵문화도 고대부터 즐겨온 스포츠의 하나입니다.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악영향도 있지만 식물의 씨앗을 퍼뜨리고 해충을 잡아먹는 등 생태계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새 연구에서 제주지역은 겨울철 월동지, 여름철 산란지, 이동 철새의 피난처 등으로 예전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육지 금강 하굿둑 등의 가창오리 떼처럼 대단위 군무는 없지만 50m 정도의 가까운 곳에서도 탐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제주에서 관찰 기록된 종은 모두 390종으로 국내 540종의 72%에 이를 정도다.

 기후변화로 아열대성 새의 출현이 잦아지는 특징도 있다. 한라산천연보호구역을 비롯해 곶자왈(용암 암괴 위에 형성된 자연림), 오름, 크고 작은 습지는 새들의 보금자리다. 특히 해안 조간대(만조 해안선과 간조 해안선 사이 부분)는 철새들의 에너지 공급처인 동시에 저어새 같은 멸종위기종들의 쉼터로서 생태학적 가치가 높다.

“중간산간 개발, 조간대 매립, 해안도로에 의한 생태 단절, 경관 훼손, 오염원 유입, 쓰레기 급증 등으로 새들의 서식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서의 위상과 브랜드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관광객보다 새들이 먼저 제주를 찾지 않을 것입니다.”

 김 연구사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제주 원형이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보다 개발과 수익의 경제적 논리만 고집하는 세상을 경계하고 있다. 제주는 ‘공생의 섬’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텃새인 섬휘파람새와 여름철새인 두견이는 먹이, 번식 등에서 경쟁적인 사이지만 서로에게 치명적이지 않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새들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새들이 지닌 형형색색의 생김새, 독특한 행동, 비행술, 집짓기 기술, 균형 감각, 계절적 이동 등은 바라보는 이들에게 생태적, 문화적, 감성적 가치를 키워주는 데 크나큰 의미를 줍니다. 이런 신비로움에 빠지다 보면 새와 함께하는 행복함이 더 커집니다.”

 그에게 새는 삶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공생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안내한 바로미터이면서 나침반이다. 현장을 다니느라 아내(46)와 두 딸 등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모자란 탓에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김 연구사는 망원경, 카메라를 가방에 챙기고 철새도래지로 향하는 발길을 멈추지 않는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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