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회사 명의로 대포통장 400여 개 유통…60억 원 꿀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2일 23시 20분


코멘트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명의를 빌려 유령회사를 세우고 400여 개의 대포통장을 만들어 판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대포통장을 사들인 사기범들의 범죄수익까지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이모 씨(32)와 김모 씨(36)를 구속하고 송모 씨(42)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씨 등은 한 법인의 명의로 통장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유령회사 명의로 400여 개 통장을 개설했다. 이어 이를 대출 사기범과 인터넷 도박사이트 운영자 등에게 개당 110만~150만 원에 팔아 60여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일당은 직업이 없거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물색해 생활비 조로 100만 원을 주고 명의를 빌려 유령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씨 일당은 대포통장을 사들인 사기범 등으로부터 통장 유지비로 매달 1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또 판매한 대포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은행에 부정계좌로 신고해 출금을 막는 수법으로 범죄조직의 돈을 가로채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포통장에 범죄수익이 입금되면 재발급받은 현금카드와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로 직접 현금을 인출했다. 이들은 대포통장 구매자에게 통장에 입금된 돈의 일부를 주지 않으면 계좌정지를 풀지 않겠다고 협박해 돈을 받아내기도 했다.

일당은 대포통장 개설자가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될 때에 대비해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개설자들에게 교육시키기도 했다. 예컨대 "취업하기 위해 관련 서류를 제출했는데 명의가 도용됐다. 출근해보니 회사도 없었다"고 진술하면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다는 식이었다.

경찰은 현재 이들이 불법 유통한 대포통장 200여 개가 약 5000억 원 규모의 대출사기와 도박자금 관련 거래에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대포통장의 유통경로를 확인해 추가로 대포통장을 구매한 범죄조직 등을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