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살배기 딸 태우고 만취운전… 美선 징역형, 韓은 벌금만

  • 동아일보

美 학대간주… 아동 숨질때 25년刑… 韓 단속대상 안돼… 잇단 사망사고
전문가 “벌금 강화 등 보호책 마련을”

만취한 엄마는 두 살배기 딸을 태우고 차를 몰았다. 경기 광주시에서 출발해 성남시 중원구의 집으로 가려 했지만 술에 취한 탓에 중간에 길을 잃기도 했다. 음주단속 중인 경찰은 7일 오후 11시 25분경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성남 나들목 앞에서 만취한 여성 이모 씨(31)를 적발했다. 이 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0.167%였다. 경찰관은 뒷좌석에 앉아 있는 아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음주단속에 걸리지 않고 그대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면 차에 탄 엄마뿐 아니라 아기의 목숨까지 위험할 뻔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술에 취해 아기까지 태워 차를 운전한 엄마를 아동학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초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을 잇달아 접하고 일가족의 행복을 파괴하는 음주운전 사고를 목격한 시민들은 이 씨의 행위가 아동학대와 음주운전이 가중된 중범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 씨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벌금만 내면 된다. 음주운전 차량에 어린이를 태운 것은 단속 대상이 아니다.

만약 이 씨가 미국에서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면 중범죄로 처벌받는다. 미국 뉴욕 주는 2009년 12월 엄마의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어린이의 이름을 딴 ‘린드라법’을 제정했다. 그해 10월 사고 당시 11세인 린드라 로사도가 사망하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다. 16세 미만 어린이를 태운 음주운전자는 최고 징역 4년에 처해지고 동승한 어린이가 사망하면 최고 25년형까지 처벌받게 된다. 미국 대부분 주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후 미국에서는 음주운전으로 딸을 장애인으로 만든 40대 여성에게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하는 등 아동동승 음주운전에 대해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아이를 위험한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것을 방임에 의한 아동학대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부모의 음주운전으로 어린이가 사망해도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조차 없었다. 지난해 4월 5일 오후 11시 반경 전북 익산시에서 술에 취한 유모 씨(47)가 갓길에 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당시 유 씨는 운전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 농도 0.175%로 차를 몰았다. 사고로 유 씨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13세 아들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2005년 9월 제주에선 40대 남성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 차에 태운 생후 7개월 아기가 숨지고 자신은 살았다.

부모뿐 아니라 어린이보호차량 운전자도 술에 취한 채 어린이를 태우고 차를 모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올해 2월 서울 동작구에선 유치원 통학버스 운전자가 혈중알코올 농도 0.156%로 유치원생 5명과 보육교사 1명을 태우고 눈길을 지그재그로 운행하다 현행범으로 검거되기도 했다. 음주운전으로부터 아동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논의와 법적 정비가 필요한 이유다.

김남철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현행 혈중알코올 농도 0.05%에서 0.03%로 강화하고, 단순히 수치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동승자 중 어린이가 있는지를 확인해 아동보호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경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린드라법은 징역형을 규정했지만 보석제도가 활성화돼 있어 풀려나기도 한다”며 “부모가 자녀를 보호해야 할 역할이 커 무조건 격리시킬 수 없기 때문에 강한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김단비 기자
#만취운전#2세 아동#동석#음주운전#미국#징역#벌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