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비문서 뺨치는 현대家 정일선 사장의 ‘갑질 매뉴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9일 00시 00분


코멘트
인터넷에 공개된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의 수행 운전기사 매뉴얼이 공분(公憤)을 일으키고 있다. 정 사장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넷째 아들인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대표의 장남으로 현대가(家) 3세다. A4용지 100장이나 되는 매뉴얼에는 운전기사가 정 사장 출근 전에 속옷과 양말, 운동복을 챙겨야 하는데 속옷은 군대에서 접듯 세 번 각을 잡고 밴드 쪽으로 말아 올려서 개라는 규정도 있다. 이 세세한 매뉴얼대로 지키지 않으면 운전기사는 경위서를 쓰고 벌점에 따라 감봉 처분을 받았다. 이쯤 되면 수행기사 매뉴얼이 아니라 현대판 노비계약이다.

‘빨리 가자는 말씀이 있을 경우 위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신호, 차선, 과속카메라, 버스 전용차로 무시하고 목적지 도착이 우선임’이라고 빨간색 글씨로 적힌 매뉴얼을 보면 법과 제도는 정 사장의 안중에 없는 듯하다. “내가 뗀 과태료만 500만∼600만 원이 넘었고, 차가 막히면 욕설과 함께 운전 중에 머리도 맞았다”는 운전기사 주장도 나왔다.

현대비앤지스틸의 매뉴얼은 미성숙한 인격의 ‘금수저’가 천민자본주의를 만났을 때의 추악한 민낯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사장의 조부 정주영 회장은 “이봐, 해봤어?”로 상징되는 한국적 기업가정신으로 기업을 키우고 산업화에 앞장섰다. 정 사장도 회사 창립 50주년인 7일 비전 선포식에서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는 동안 우리 회사의 핵심은 ‘고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가장 가까이서 일하는 운전기사도 사람답게 대우하지 않는 사장이 어떻게 고객을 동반자로 챙기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어제 정 사장은 뒤늦게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미숙했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46세에도 ‘젊음’을 면죄부로 내세우는 정 사장 같은 3세 경영인 때문에 ‘흙수저’ 논란과 반(反)기업적 정서가 불거지는 것이다.
#현대비앤지스틸#정일선#운전기사 매뉴얼#현대판 노비계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