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재개원 위해…796명 인적사항 도용, 서명부 조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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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주민투표 추진

2013년 문을 닫은 경남 진주의료원의 재개원을 요구하는 주민투표 서명부 작성 과정에 무더기 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지방경찰청은 21일 790여 명의 인적사항을 도용해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위한 주민투표 청구인 서명부를 만든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로 경남 합천 지역 진보단체 대표인 강모 씨(45·여)를 구속했다. 경찰은 또 강 씨를 도와 허위서명을 한 김모(22·여), 정모 씨(22·여) 등 3명을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경남 지역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2013년 5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자 재개원 투쟁을 벌이며 주민투표를 추진했다. 진주의료원 주민투표 서명 수임인인 강 씨는 지난해 5, 6월 자신이 근무하는 합천의 한 아동센터에서 661명의 인적사항을 서명부에 적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 등은 아동센터에서 강 씨를 도와 135명의 인적사항을 옮겨 적어준 것으로 조사됐다. 강 씨는 김 씨 등이 중고교 재학 때 공부를 가르치며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가 허위서명에 사용한 원본은 지난해 작성된 ‘학부모 100만 명 서명운동’ 명부였다.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한 홍 지사에게 무상급식 재개를 요구하기 위해 추진된 운동이었다. 강 씨는 서명부 100장, 1500명의 인적사항을 복사해 뒀다. 이어 허위서명이 드러나지 않도록 여러 가지 펜과 필적을 사용해 이름과 주소를 옮겨 적었다. 경찰은 경남도가 자체 검증을 통해 ‘허위서명으로 의심된다’며 고발한 1957명의 명부를 바탕으로 필적을 비교해 강 씨의 범행을 밝혀냈다. 강 씨는 경찰에서 “주민투표가 잘 진행돼야 홍 지사 주민소환도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경남에서 주민투표가 말썽을 빚은 건 처음이 아니다. 창원서부경찰서는 보수단체가 추진한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주민소환 서명부 허위작성에 개입한 혐의로 박치근 경남 FC 대표(57) 등 2명을 구속하고 박재기 경남개발공사 사장(58) 등 22명을 입건한 상태다. 박 씨 등은 지난해 11월 28일부터 12월 22일까지 창원시 북면의 한 사무실에서 박 교육감 주민소환 청구인 서명부에 2300여 명의 서명을 허위작성토록 지시한 혐의다. 이들은 홍 지사 측근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모두 사직했다. 경찰은 허위서명에 이용된 개인정보의 대량 유출 과정을 캐고 있다.

2012년 12월 새누리당 소속의 홍 지사, 2014년 7월 진보 성향의 박 교육감이 취임하면서 경남에서는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투표가 남발되고 조작까지 이뤄지면서 오히려 ‘주민참여제도’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종근 민주도정 경남도민모임 대표는 “직접 민주주의제와 민의를 왜곡하는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며 “수작업보다 전자서명부 작성 등 대안을 검토해야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서명부#진주의료원#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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