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부터 나무를 만지기 시작했던 소년 목수는 숭례문 중수(重修) 현장에서 장정 16명이 거목을 옮기는 황홀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 이제 이 일 아니면 안 되겠구나….’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거대한 나무들이 그득하던 그곳에서 그는 대한민국 대목(大木·큰 건축물을 맡는 목수)의 꿈을 꿨다. 신응수 대목장(大木匠·74)이 갓 스무 살 되던 1962년 3월이었다.
일흔 노인이 됐어도 나무 욕심은 변치 않았다. 그 욕심이 화를 불렀다. “평생 나무를 만지는 ‘부모’로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귀한 나무는 잘라서 단목으로 사용하면 안 되거든요.” 경복궁 광화문 복원용 금강송 4그루를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신 대목장은 고개를 푹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4부(부장 조재빈)는 신 대목장에 대해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벌금 700만 원 약식기소를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2013년 대대적인 경찰 수사에 이어 이듬해 검찰로 사건이 송치된 지 2년 만이다.
문화재청은 2008년 3월 광화문 복원공사용으로 강원 양양군 법수치 계곡 일대에서 벌채한 소나무 26그루를 신 대목장에게 제공했다. 그는 이 중 4그루(시가 1200만 원 상당)를 강릉의 개인 목재창고로 옮겨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복원공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소나무로 대체해 진행했다.
당초 경찰에서 “문화재청에서 받은 목재 재질이 불량했다”고 주장했던 신 대목장은 검찰의 현장검증 앞에 무너졌다. 지난달 중순 검사 등 수사인력 3명, 문화재청 전문위원 4명은 강릉 창고를 확인한 결과 문화재청이 제공한 지름 74cm 안팎의 우량 대경목 4그루가 잘 건조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유식별번호, 품종, 벌채지역과 연도, 수령 등의 정보를 담은 라벨에 다른 내용을 덧붙이거나 아예 나무 밑동을 잘라내 감추려 한 흔적도 찾아냈다.
일주일 뒤 검찰 조사에서 신 대목장은 “국유림에서만 자라는 (광화문 복원용) 4그루는 시중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크기였다. 너무 아까웠다”며 범행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는 “훗날 궁궐을 다시 짓고 고칠 때 쓰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대목장은 이 밖에도 2011, 2012년 진행된 경복궁 소주방권역(대장금이 일하던 궁궐 부엌) 복원공사를 맡기 위해 문화재수리 기술자 2명의 자격증을 불법으로 빌린 혐의(문화재수리법 위반)로도 약식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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