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송 잘라쓰기 아까워 감췄다는 ‘대목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광화문 복원때 4그루 빼돌린 신응수씨 약식기소… 檢, 횡령혐의 벌금 700만원

열여섯부터 나무를 만지기 시작했던 소년 목수는 숭례문 중수(重修) 현장에서 장정 16명이 거목을 옮기는 황홀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 이제 이 일 아니면 안 되겠구나….’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거대한 나무들이 그득하던 그곳에서 그는 대한민국 대목(大木·큰 건축물을 맡는 목수)의 꿈을 꿨다. 신응수 대목장(大木匠·74)이 갓 스무 살 되던 1962년 3월이었다.

일흔 노인이 됐어도 나무 욕심은 변치 않았다. 그 욕심이 화를 불렀다. “평생 나무를 만지는 ‘부모’로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귀한 나무는 잘라서 단목으로 사용하면 안 되거든요.” 경복궁 광화문 복원용 금강송 4그루를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신 대목장은 고개를 푹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4부(부장 조재빈)는 신 대목장에 대해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벌금 700만 원 약식기소를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2013년 대대적인 경찰 수사에 이어 이듬해 검찰로 사건이 송치된 지 2년 만이다.

문화재청은 2008년 3월 광화문 복원공사용으로 강원 양양군 법수치 계곡 일대에서 벌채한 소나무 26그루를 신 대목장에게 제공했다. 그는 이 중 4그루(시가 1200만 원 상당)를 강릉의 개인 목재창고로 옮겨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복원공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소나무로 대체해 진행했다.

당초 경찰에서 “문화재청에서 받은 목재 재질이 불량했다”고 주장했던 신 대목장은 검찰의 현장검증 앞에 무너졌다. 지난달 중순 검사 등 수사인력 3명, 문화재청 전문위원 4명은 강릉 창고를 확인한 결과 문화재청이 제공한 지름 74cm 안팎의 우량 대경목 4그루가 잘 건조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유식별번호, 품종, 벌채지역과 연도, 수령 등의 정보를 담은 라벨에 다른 내용을 덧붙이거나 아예 나무 밑동을 잘라내 감추려 한 흔적도 찾아냈다.

일주일 뒤 검찰 조사에서 신 대목장은 “국유림에서만 자라는 (광화문 복원용) 4그루는 시중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크기였다. 너무 아까웠다”며 범행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는 “훗날 궁궐을 다시 짓고 고칠 때 쓰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대목장은 이 밖에도 2011, 2012년 진행된 경복궁 소주방권역(대장금이 일하던 궁궐 부엌) 복원공사를 맡기 위해 문화재수리 기술자 2명의 자격증을 불법으로 빌린 혐의(문화재수리법 위반)로도 약식기소됐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금강송#광화문#복원#횡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