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 시험’된 과탐Ⅱ… 최상위권 ‘그들만의 리그’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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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과탐Ⅱ 기피 현상 심화

“이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과학탐구Ⅱ를 선택하면 대학을 못 감.”

이달 초 수험생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오르비’에 올라온 한 수험생의 충고다. 또 다른 수험생은 생명과학Ⅱ에서 3점짜리 단 한 문제를 틀렸는데 2등급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가톨릭대 의대 진학에 실패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과탐Ⅱ 선택 학생은 까딱하면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며 “이건 제도상의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과탐Ⅱ 과목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27일 기자가 만난 한 대형 입시업체 관계자는 “과탐Ⅱ는 쉽게 말하면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과탐Ⅱ 난도가 필요 이상으로 높아진 탓에 보통의 수험생들은 풀 수도 없고, 서울대 의대 등 일부 명문대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만 몰려들어 시험을 치른다는 말이다. 서울대는 의대 등 자연계열의 정시모집에서 과탐Ⅱ 성적을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자연계 상위권 중에서도 최상위권 학생들만 몰려 시험을 치르고, 성적은 상대평가로 나오는 시스템 때문에 과탐Ⅱ는 ‘비정상적인 과목’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과탐Ⅱ가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2005학년도 수능에서는 과탐 응시자 총 19만5182명 중 물리Ⅱ, 화학Ⅱ,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Ⅱ 등 Ⅱ과목 응시자가 96.5%(18만8215명)에 달했다. 나머지 3.5%만이 Ⅰ과목을 치렀다. 이때는 자연계열 학생이면 으레 과탐Ⅱ를 응시하는 것이 당연한 때였고, 난도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치러진 2016학년도 수능에서는 과탐 응시자 중 Ⅱ과목 응시자는 17.9%에 불과했다. 이상할 정도로 높아진 난도, 최상위권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경쟁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응시자가 확 줄어버린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정부의 ‘물수능(쉬운 수능)’ 기조에 따라 국어, 영어, 수학이 계속 쉽게 출제되고, 반면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가려낼 수 있는 변별력을 확보할 과목을 요구하는 가운데 과탐Ⅱ만 유독 어려워진 것이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학생들에게는 과탐Ⅱ 응시 자체가 ‘모 아니면 도’식의 도박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과학과목 전반에 대한 기피 현상까지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메가스터디 관계자도 “일례로 지난해 수능에서 생명과학Ⅱ의 경우 ‘다 맞으면 서울대 의대, 1개 틀리면 지방대 의대’ 식으로 진폭이 컸다”며 “이는 정상적인 체제의 시험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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