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우리 조상들은 왜 돌을 벗으로 생각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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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매력적인 까닭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 야외전시실의 설경. 돌로 된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옛돌박물관 제공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 야외전시실의 설경. 돌로 된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옛돌박물관 제공
우리가 박물관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문화재는 무엇일까요? 박물관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구석기실에 있는 돌로 만든 주먹도끼일 겁니다. 저 선사시대 사람들이 사용했던 최고의 생활도구인 손도끼. 그건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돌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하지요.

○ 인간과 함께해 온 돌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돌 모두 지구가 탄생할 때 만들어졌을 텐데, 어느 돌은 그냥 돌이고 어느 돌은 문화재냐고 말입니다. 그건 이렇습니다. 인간의 흔적, 그러니까 선사시대 사람들이 가공해 사용한 흔적이 있는 돌은 문화재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그냥 돌입니다. 인간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은 것,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바로 문화재라는 사실을 의미하지요.

돌로 된 문화재는 많습니다. 구석기 신석기시대의 생활도구들(주먹도끼 찌르개 반달모양돌칼 등)은 물론이고 청동기시대 무기로 사용했던 돌칼(석검),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그렇지요. 불교 문화재인 석탑과 마애불(바위에 조각한 불상), 마을을 지켜주는 돌장승과 돌하르방, 무덤 주변을 호위하고 있는 문인석 무인석(장군석) 석수(돌짐승), 생활용품인 돌확 돌절구 다듬잇돌은 모두 돌로 된 문화재입니다.

당당한 모습의 조선시대 왕릉 장군석.
당당한 모습의 조선시대 왕릉 장군석.
○ 돌의 인간적 미학

바위에 새긴 마애불을 한번 둘러볼까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산중이나 계곡에 있기도 하고, 저 높은 산 정상에서 속세의 땅을 굽어보기도 합니다. 또 동네 어귀에서 아저씨처럼 사람들을 맞이할 때도 있죠.

돌은 토속적인 수호신의 역할도 합니다. 시골의 당산나무 주변엔 으레 돌탑이 있고 마을 어귀에는 돌로 만든 장승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이러한 돌장승과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대부분 마을의 수호신이었답니다. 하지만 이 수호신들의 얼굴 표정은 무섭고 근엄하기보다 익살스럽고 편안합니다. 인간적이지요.

○ 군자의 상징

17세기 선비 문인이었던 윤선도는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 송죽(松竹)이라”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시에 돌이 나오지요. 윤선도는 왜 돌을 중요한 벗으로 생각했을까요? 돌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부러 옮겨놓지 않는 한 늘 그 자리를 지키면서 온갖 비바람을 견디어 내지요. 돌은 이처럼 굳센 의지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변치 않는 돌의 정신을 배우고자 했어요. 돌은 그렇게 군자의 상징이 되었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그린 문인화를 보면 깊은 산속 바위에 앉아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곤 합니다. 이때 바위(돌)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정감이 넘치는 돌확.
정감이 넘치는 돌확.
○ 돌의 모든 것, 우리옛돌박물관

최근 서울 성북동 풍광 좋은 곳에 우리옛돌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무덤 주변에 조성한 능묘조각(문인석 장군석 석수 장명등 망주석 등)과 민간 신앙을 보여주는 동자석 장승(벅수) 솟대를 비롯해 석탑과 석불 등 돌 문화재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는 유물 1200여 점이 실내외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무덤을 지키는 장군석에서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문인석에서는 차분함과 넉넉함을 절로 느끼게 됩니다. 장승의 표정은 어떤가요? 그 천진하고 해학적인 표정에서 오래전 보통 사람들의 애환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옛돌박물관 야외전시실을 걷다 보면 문인석 장군석 망주석 장승 하르방을 비롯해 석탑과 석불, 게다가 와불(臥佛·누워 있는 부처를 조각한 불상)까지 사람을 맞이합니다. 와불 앞에선 발길이 절로 멈추게 됩니다. 매력적인 체험이지요.

일본에서 환수해온 석물을 한데 모아놓은 전시공간도 눈길을 끕니다. 이 땅의 무덤을 지키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약탈당한 뒤 2001년 우리옛돌문화재단이 되찾아온 것들입니다. 환수해온 문인석 장군석 동자석 70점 가운데 문인석 47점을 전시하고 있어요. 문인석들은 주로 한 쌍으로 되어 있는데, 환수해온 문인석들은 짝을 잃어버린 것이 많습니다. 일본으로 밀반출되어 이리저리 유랑의 세월 속에서 짝을 잃게 된 것이지요.

이곳에서 만나는 석물들은 대개 수백 년 이상 1000년 가까이 세월을 견뎌온 것들입니다. 석물들 구석구석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돌로 된 문화재를 감상하다 보면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돌에 담겨 있는 소박한 인간미, 성스러움을 추구했던 종교적 심성, 변하지 않는 굳셈을 배우고자 했던 선비들의 정신…. 눈 내리는 날, 우리옛돌박물관에 가면 더욱 좋습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돌#우리옛돌박물관#장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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