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탁구커플의 아들, 골프 챔피언으로 홀로 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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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훈, 유럽 메이저급 대회 우승

한때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누구의 아들’로 불렸다. 그래서였을까. 2.7g의 공으로 사각의 탁구대를 주름잡았던 부모와 달리 그는 45g의 골프공과 함께 탁 트인 필드를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엄마, 아빠와는 다른 길을 걷던 그는 이제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한중 핑퐁 커플’ 안재형 씨(50)와 자오즈민 씨(52) 부부의 외아들 안병훈(24)이다.

안병훈은 25일 잉글랜드 버지니아워터의 웬트워스 골프장(파72)에서 끝난 유러피안투어 BMW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이 대회는 총상금 500만 유로(약 61억 원)로 유럽에서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초특급 대회다. 안병훈은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7타를 줄여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그것도 역대 최다 언더파 기록인 21언더파(267타·종전 19언더파)의 스코어로 태국의 골프 영웅 통차이 짜이디(46)와 51세의 노장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를 6타 차로 따돌렸다.

2009년 ‘한중 핑퐁 커플’인 아버지 안재형(오른쪽), 어머니 자오즈민 씨(왼쪽)와 환하게 웃고 있는 안병훈. 동아일보DB
2009년 ‘한중 핑퐁 커플’인 아버지 안재형(오른쪽), 어머니 자오즈민 씨(왼쪽)와 환하게 웃고 있는 안병훈. 동아일보DB
올 시즌 유러피안투어에 데뷔해 첫 승을 거둔 그는 지난 시즌 벌어들인 상금 15만 유로의 6배에 가까운 83만3330유로(약 10억1500만 원)를 단번에 받아 상금 3위로 뛰어올랐다. 안병훈은 “달 위를 걷는 기분이다. 내 인생을 뒤바꿀 만한 우승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4언더파로 우승했던 세계 1위 로리 매킬로이(26·북아일랜드)가 예선 탈락했지만 안병훈의 돌풍 속에 갤러리 수도 대회 사상 최다인 11만3640명을 기록했다.

이번 우승으로 안병훈의 세계 랭킹은 132위에서 54위까지 치솟았다. 안병훈은 “부모님처럼 올림픽에 나가는 게 큰 목표”라고 했다. 아버지 안 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고, 어머니 자오 씨는 같은 대회에서 복식 은메달, 단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을 통해 사랑을 키운 둘은 1989년 결혼해 1991년 9월 17일 안병훈을 낳았다. 그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988년 9월 17일은 서울 올림픽 개회식 날이었다.

올림피안 집안의 피를 물려받은 안병훈은 골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복귀하는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내년 7월까지 세계 랭킹에 따른 올림픽 랭킹에서 60위 이내에 들면 출전 자격을 얻는데 안병훈의 현재 세계 랭킹은 한국 선수 중 최고다.

한국 탁구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어 태릉선수촌에서 TV로 우승 장면을 지켜본 안 씨는 “내 아들이 아닌 것 같았다. 부모 성격을 닮아 다혈질이었는데 여유가 많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사업차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자오 씨는 “믿기지 않는다. 다시 만나면 만두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안병훈은 7세 때 아버지를 따라 실내골프연습장을 갔다 골프를 시작했다. 안 씨는 2005년 안병훈을 미국 플로리다 주로 골프 유학을 보냈다. 2007년 아들이 빈혈 증세로 건강이 나빠지자 대한항공 감독 자리까지 포기한 채 미국으로 건너가 운전사, 캐디 등을 도맡았다. 안병훈은 2009년 US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역대 최연소(17세)로 우승했다. 하지만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를 1년 다니다 2011년 프로로 전향한 뒤 슬럼프에 빠졌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도전했다 실패한 뒤 유러피안투어 2부인 챌린지투어에서 뛰며 실력을 키워 왔다. 지난해까지 아들의 캐디를 맡았던 아버지 안 씨는 “너무 일찍 운 좋게 최고가 되다 보니 자만심에 빠져 고생한 것 같다”고 했다.

자오 씨는 중국에서 이동전화 부가서비스 업체 대표이사를 맡아 한중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다. 안병훈은 미국 올랜도에서 73세 할머니와 살고 있다. 아버지 안 씨는 구력 15년에 골프는 보기 플레이 수준. 안병훈은 “내가 크고 느려 탁구를 안 했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내 롤모델이다. 운동선수로서 갖춰야 될 많은 걸 가르쳐 주셨다”며 고마워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탁구커플#안병훈#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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