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에 덜미잡힌 입찰비리… 룸살롱 큰손서 빈털터리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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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입찰조작 134억 챙긴 6명
신권지폐만 받아 추적 피했지만 공사구간-금액 적어놨다 들통
유흥비-해외골프여행 수십억 펑펑… 아파트-오피스텔 39채 등 국고 환수

7일 오후 2시경 인천국제공항 일본행 비행기 안. 공항경찰대 경찰관들이 이륙을 코앞에 둔 비행기에 황급히 올라와 누군가를 찾았다. 경찰관들은 좌석에 앉아 있던 한전KDN 협력회사인 H사 직원 강모 씨(38·구속기소)를 발견하고 수갑을 채웠다. 강 씨는 한전 배전공사 입찰 비리 용의자 6명 중 1명이었다.

전산 조작을 통한 한전 배전공사 입찰 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또 다른 H사 전 직원 박모 씨(40). 주범 격인 그는 2005년 자신이 직접 만든 전산조작 프로그램을 통해 입찰 비리를 저지르기 시작하면서 ‘업자 1명에게 연간 공사 1건만 낙찰받게 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낙찰 대가로 받은 돈은 모두 신권 지폐로만 받았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서울 강남의 룸살롱 출입이 잦아지고, 매월 해외 호화 골프 여행을 다니면서 이 원칙이 깨졌다.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2010년 업자 1명에게 공사 2건을, 지난해에는 특정 업체에 30건을 몰아주면서 업계에 소문이 퍼져 결국 꼬리가 잡혔다. 이들이 유흥비로 탕진한 돈만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들은 서울 강남 유흥가에서 ‘큰 고객’으로 통했다. 철저하게 현금으로만 뒷돈을 받았지만 공사 낙찰업체에서 받은 뒷돈을 분배하기 위해 공사 구간, 공사 금액, 분배 액수 등을 적어 놓은 메모지가 결정적 단서가 됐다.

이 6명이 10년 동안 챙긴 돈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134억 원. 이 돈으로 이들은 경기 성남시 분당과 용인시에 아파트 4채, 광주 서구 상무지구에 오피스텔 35채, 외제 승용차 5대 등을 사들였다. 검찰은 이들 명의의 부동산과 외제 승용차, 현금 등 80억 원 정도를 압류 또는 보전 조치했다. 나머지 50억 원이 넘는 돈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거나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수사 초기 검찰에서 “금고에 든 현금 4억여 원은 어머니 돈이다” “오피스텔은 가족과 회사 소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모지’를 들이밀며 추궁하자 결국 “추적을 피하기 위한 은닉재산”이라고 실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 등은 “쉽게 번 돈이라 흥청망청 썼지만 범죄 수익 추징으로 빈털터리 신세가 돼 패가망신했다”며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을 수사해 온 광주지검은 은닉재산이 더 있는지 추적하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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