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용]홈쇼핑 과락제, 면죄부 되지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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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점 이상 얻으면 심사 통과
기준 모호… 객관적 평가 어려워,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 반영해야

김기용·산업부
김기용·산업부
“‘슈퍼 갑질’ 홈쇼핑이 정말 문을 닫는 건가요.”

동아일보 단독 보도(1월 14일자 A1면)를 접한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독자들의 이메일 문장이나 전화 음성에서 왠지 모를 ‘기대감’도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처벌할 리 없겠지’라고 체념했던 사람도 ‘땅콩 회항’으로 구속된 재벌 3세 조현아를 보면서 ‘갑질’ 처벌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모양이다.

곧 롯데홈쇼핑, 현대홈쇼핑, NS홈쇼핑 등 3개 홈쇼핑에 대한 재승인 심사가 진행된다. 과거에는 업체가 21개 세부 심사항목에서 1000점 만점에 650점 이상을 얻으면 예외 없이 재승인을 받았다. 1995년 한국에 TV 홈쇼핑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한 업체는 하나도 없다. 재승인 심사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조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과락제가 처음으로 도입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홈쇼핑의 범죄행위와 불공정행위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심사항목을 별도로 분류해 이 항목에서 배점의 50% 미만이면 탈락시키기로 했다. 해당 항목의 배점도 2배 이상 높였다. 또 미래부는 TV 홈쇼핑이 공적인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승인 유효 기간을 현행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할 수 있게 했다. 미래부는 이런 조치에 대해 스스로 “홈쇼핑 임직원의 비위행위 등을 근절 예방할 수 있는 요건을 대폭 강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대가 된다. 그러나 오랜 ‘체념’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갑질 홈쇼핑을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문병호 의원은 “50% 미만이 과락이라면 50% 이상이면 ‘면죄부’란 뜻”이라면서 “과락 기준이 너무 낮다”고 주장했다.

범죄행위와 불공정행위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부분에서 100점 만점에 50점만 얻으면 통과할 수 있다는 기준을 어떤 국민이 납득하겠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심사항목은 수치로 계량화가 불가능한 정성평가 대상이다.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다.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의 김영훈 경제실장은 “이 규정은 범죄행위와 불공정행위를 적당히 하라는 이야기”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공은 재승인심사위원회에 넘어간 상태다. 2월까지 구성되는 심사위원회는 의결을 통해 미래부가 사전에 마련한 세부 심사항목의 배점을 조정할 수 있다. 꼼꼼한 심사는 기본이고, 필요하다면 과락 기준의 조정까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심사에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를 반영해야 한다.

김기용기자 kky@donga.com
#홈쇼핑#과락제#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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