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 피하자” 10월 축의금 폭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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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시작전 결혼 집중… “청첩장이 5만원짜리 청구서 같아”

토요일인 4일 오전 5년차 직장인 황모 씨(31)는 안방 옷장에서 알록달록한 체크무늬 넥타이를 골라 맨 뒤 검은색 넥타이를 따로 챙겨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어 축의금 봉투와 부조금 봉투 2개를 꺼내 전날 출금해 둔 5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나눠 넣었다. 지인들의 경조사가 겹쳐 오전에는 결혼식장, 오후에는 장례식장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부족해 들르지 못하는 다른 회사 후배 결혼식에는 축의금만 보내기로 했다. 그쪽 결혼식에 가는 동료에게 스마트폰 모바일 뱅킹으로 5만 원을 송금했다. 며칠 전 친한 친구 결혼 때 10만 원을 넣은 걸 생각하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황 씨는 “지난달 21일부터 지금까지 부조금으로 50만 원이 나갔는데 이달에도 결혼식이 3건이 더 있다”면서 “월급 300만 원 받아 부조금을 이렇게 쓰다 보니 청첩장 받기가 겁이 난다”라고 말했다.

올해 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박모 씨(29·여)도 요즘 몰려드는 청첩장이 두렵긴 마찬가지다. ‘직장인’일 땐 몰랐지만 수입이 끊긴 뒤부터는 청첩장이 ‘5만 원짜리 청구서’로 보인다. 지난달 말 2건의 결혼식을 챙기고 나니 이달에는 9, 11, 18일에 또 다른 결혼식들이 박 씨를 기다리고 있다. 박 씨는 “결혼을 하는 친구와 나의 관계가 5만 원짜리인지 10만 원짜리인지 고민하는 내가 치사해 보인다”며 한숨지었다.

올해 윤달(10월 24일∼11월 21일)을 피해 9월 말과 10월 초에 결혼 날짜를 잡은 예비부부가 급증하면서 최근 직장인들이 축의금 부담에 몸살을 앓고 있다. 환절기에 독한 감기까지 돌아 갑작스레 타계하는 어르신들이 늘면서 조의금 부담까지 겹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윤달이 끼어 있던 2012년(윤달 4월 21일∼5월 20일)의 경우 4월 혼인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100건(8.2%) 늘어난 반면 5월에는 전년 동월과 비교해 2500건(8.3%) 줄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윤달 결혼을 피하기 위해 혼인을 앞당기거나 늦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올해에도 이처럼 윤달을 피한 결혼이 늘어나면서 축의금 부담이 급증한 것이다. 4년차 직장인 류모 씨(31)는 지난달 중순부터 이달까지 7건의 결혼식에 참석해 이미 80만 원의 부조금을 냈다. 하지만 진짜 ‘결전의 날’은 따로 있다. 윤달이 끝난 직후인 다음 달 22일경이다. 그날에만 고등학교 친구와 대학교 친구의 결혼식 3건이 몰려 있다. 류 씨는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결혼하는 친구에게 가전제품을 사주자고 하던데 아마 30만∼40만 원이 한 번에 나갈 것 같다”고 울상을 지었다.

조의금 부담도 만만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환절기인 10월은 겨울철(12월∼다음 해 3월)을 제외하고 65세 이상 노인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달이다. 평소 모든 경조사를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대기업 부장 정모 씨(47)가 남모를 고민을 하는 이유다. 그는 “경사는 몰라도 조사는 다 챙겨야 하지 않겠나”라며 “이달에는 많이 친하지 않은 지인들의 자녀 결혼식은 건너뛸까 하고 고민 중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윤달#축의금#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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