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진]팽씨의 잘못된 의리… 김씨의 거짓 의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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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義理)가 대세다. 영화배우 김보성 씨가 수년간 고집스럽게 강조하던 의리가 이제는 누구나 즐겨 쓰는 유행어가 됐다. 한국의 유행어를 예습했는지 모르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4일 서울대 강연 때 두 나라 관계를 ‘의리’로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의리로 주목받는 곳이 또 있다.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김형식 서울시의원(44·구속)과 팽모 씨(44·구속)의 관계다. 경찰 조사에서 팽 씨는 “10년 친구인 김 의원의 부탁을 받아 송모 씨(67)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앞서 팽 씨는 2004년 둘째 형의 소개로 김 의원을 만났다. 동갑내기인 둘은 친구가 됐다. 자주 만나 어울리며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남다른 친구 사이가 되면서 돈이 오가기 시작했다. 2008년 팽 씨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 김 의원은 생계가 어려운 친구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100만 원 안팎의 용돈을 쥐여줬다. 이렇게 건넨 돈이 경찰 조사 결과 1300만 원에 이른다. 이때만 해도 팽 씨는 “형식이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2년 12월 김 의원은 팽 씨에게 심각한 고민을 털어놨다. “송 씨에게 돈을 5억 원 정도 빌렸는데 빨리 갚으라고 압박한다”는 것. 그리고 끔찍한 일을 부탁했다. 이후 김 의원은 망설이는 팽 씨에게 “(살인) 왜 안 해?” “이번이 마지막이다. 꼭 실행해라”라며 세뇌하듯 독촉도 했다. 결국 팽 씨는 자신을 도와준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의 비뚤어진 의리는 범행 이후에 맨얼굴을 드러낸다. 김 의원은 5월 말 팽 씨가 중국 선양(瀋陽)에서 체포되자 중국 구치소에 있는 팽 씨에게 “죽어버리든지 탈옥하라”고 했다. 실제로 팽 씨는 구치소에서 4∼5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팽 씨가 잘못된 의리를 끊은 계기는 6월 24일 한국에 들어왔을 때다. 그는 공항에서 경찰이 보여준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펑펑 울었다. ‘사실대로 다 이야기하고… 왜 당신이 혼자 다 안고 가려고 해… 죽지 마’라는 아내의 부탁이었다.

팽 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한 와중에도 김 의원은 여전히 의리를 강조하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중이던 김 의원은 팽 씨에게 ‘정말 미안하다. 사과를 받아줄지 모르겠다’고 달래며 ‘무조건 묵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팽 씨에 대해 “의리는 있으나 깡패”라고 묘사했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는다. 김 의원이 생각한 의리와 팽 씨가 생각한 의리 사이에 너무 큰 차이가 느껴진다.

박성진·사회부 psjin@donga.com
#김형식#의리#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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