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탈북자 영어교실 선생님은 경찰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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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부경찰서 김대현 경사
입시영어 강의 경험 살려 파출소 회의실서 매주 수업

김대현 경사(화이트보드 앞)가 쉬는 시간을 쪼개 탈북주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전 동부경찰서 제공
김대현 경사(화이트보드 앞)가 쉬는 시간을 쪼개 탈북주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전 동부경찰서 제공
주말을 앞둔 매주 금요일 저녁 대전 동구 판암동 새생명복지관의 한 강의실은 영어 공부 열기로 뜨겁다. 수강생 8명은 대학 진학을 앞둔 고교생과 원서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 새내기, 대학 공부를 희망하는 40대 여성까지 다양하다. 공통점은 형편 때문에 학원 수강이 어려운 탈북주민이라는 것.

영어강사는 대전 동부경찰서 보안계 외사업무 담당자인 김대현 경사(43). 한남대 법학과를 나온 그는 경찰에 들어온 1999년 이전 2년여 동안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대입학원에서 성문종합영어를 가르친 강사 출신이다. 그는 경찰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재능 기부를 시작했다. 첫 발령지인 충남 부여경찰서 임천지구대(당시 지서)에서 자율방범대 사무실을 빌려 동네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재능 기부가 본격적인 수업으로 발전한 것은 2012년 2월 대전 천동파출소에 근무할 때부터. 김 경사는 “당시 학교폭력과 왕따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경찰이 청소년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새로 지어 비교적 공간이 넉넉한 천동파출소 회의실은 ‘꿈이 있는 영어교실’로 탈바꿈했다. 김 경사는 과거의 경험을 살려 필수문법과 생활영어를 정리한 교재도 자체 제작했다. 비번 날인 화, 금요일 두 차례 여는 영어수업에는 동네 저소득층 학생 20여 명이 몰려들었다.

김 경사는 올 2월 근무 여건상 시간 내기가 어려운 보안계로 발령이 나자 이제 영어수업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최용호 보안계장이 “재능을 그대로 두기 아깝다”며 탈북주민 영어 봉사를 주선해 줬다.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반부터 2시간 동안 경찰과 탈북주민은 사제로 만난다. 면담 등 공식 절차보다는 영어수업을 통해 탈북주민의 애환을 가감 없이 들을 수도 있다. 김 경사는 “다른 탈북주민 대학생들도 이번 여름방학에 영어수업을 받고 싶다고 전해 왔다”며 “북한에서 러시아어만 배워 한국에서 영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대전 동부경찰서#김대현#영어#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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