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으로 방송 내주겠다” 8억 챙긴 외주제작 대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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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 도서 기부’ 명목으로 요구… 식당 1곳서 160만∼250만원씩 받아
아파트-외제차 사고 결혼자금 사용

방송 외주제작업체 A사 대표 김모 씨(32)는 지난해 케이블TV ETN의 ‘맛의 달인’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방송제작비 명목으로 식당 주인들에게 금품을 요구했다. 그러나 업주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모교 도서기부’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직원들을 시켜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검색한 식당들에 전화를 돌렸다. 식당 업주들에게는 “20∼4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리서치 조사 기관을 통해 의뢰한 결과 최고의 식당으로 선정됐다”고 거짓으로 유혹했다. 이어 “어려운 소외계층 학생들을 위한 기부운동을 하고 있다”며 “모교에 도서를 기부하는 것인데 기부금은 전액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속였다. 업주들은 식당을 홍보하는 동시에 자신의 모교에 도서를 기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1인당 160만∼250만 원을 지불했다. 김 씨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식당 479곳으로부터 총 8억7490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김 씨는 받은 돈의 10%로 재고 도서 등을 권당 1400∼2500원에 구입해 해당 학교에 기증했다. 도서를 받은 학교에서는 이 책들이 아이들이 보기 어렵거나 오래된 것들이어서 대부분 창고에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을 낸 업주들은 세금 공제도 거의 받지 못했다. 김 씨는 받은 돈을 아파트 매입대금, 결혼자금으로 썼으며 외제차와 명품시계를 구입하는 데도 사용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사기 등의 혐의로 김 씨를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일부 업소의 상술도 문제다. 블로거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원고를 청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특수부위전문 체인점을 운영하는 C 씨(48)는 “짧은 시간에 식당을 알리는 방법은 방송이나 인터넷 블로그가 최고”라고 말했다.

‘맛집’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거짓으로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일도 있었다.

대전 서구의 한 음식점 주인 K 씨(51)는 지난달 지인 100여 명에게 ‘점심 무료 제공’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반가운 문자에 식당을 방문한 지인들은 그제야 모 방송사에서 ‘맛집’ 촬영을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님이 꽉 찬 모습처럼 보여주기 위해 연출한 것. 특히 이날 K 씨 음식점에는 이 가게를 인수하려는 사람들이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에 나가고 손님도 많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과시한 뒤 식당 권리금을 높게 받으려는 주인의 얄팍한 상술이었다.

김성모 기자·대전=이기진 기자 mo@donga.com
#방송 외주제작업체#맛집#맛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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