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일대 돌며 광고효과 높이려 일부러 서행
낮시간대 대형차에 광고물 불법 도배… 2, 3대씩 무리지어 천천히 주행
강남경찰서, 업주-운전자 16명 조사
체리 광고로 차량 전체를 도배한 19t 트럭 두 대가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역 인근 도로를 천천히 주행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이 트럭들은 이날 오전 11시 30분경부터 단속되기 직전인 오후 4시 50분경까지 강남 일대를 돌며 불법 옥외광고를 했다. 강남경찰서 제공
섬유회사 영업사원 허모 씨(28)는 낮에 차를 타고 서울 강남 테헤란로를 다닐 때마다 화가 치민다. 각종 광고물로 차량 전체를 도배한 45인승 대형 버스와 트레일러들이 도로를 천천히 주행하며 교통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허 씨는 분통이 터지면서도 혹시나 대형 차량들에 부딪혀 사고가 날까봐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꽉 잡는다.
차량 전체를 광고물로 도배한 ‘래핑카(wrapping car)’들이 서울 강남과 도심 혼잡지 도로에서 활개 치면서 출퇴근 시간이 아닌 대낮에도 교통 체증을 유발하고 있다. 일부 광고업자들이 인구밀집지역이라 홍보 효과가 높은 강남 일대에 버스나 트레일러 등 대형 차량을 움직이는 광고판처럼 이용해 불법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은 차량 전체를 성형외과 뮤지컬 영화 의류 과일 등의 광고물로 도배한 대형 버스와 트레일러 등을 이용해 강남 일대 도로를 서행하며 불법 광고를 해 온 업주와 운전자 16명을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차량을 이용한 광고는 허가를 받은 사업용 차량에 한해 창문을 제외하고 각 면 면적의 50% 이내로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허가받지 않은 차량에 앞창문을 제외한 차량 전면을 광고물로 도배한 채 불법 광고를 해 왔다. 차량을 이용해 불법 광고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찰에 따르면 대부분의 래핑카 불법 광고는 대형 차량을 집단 동원해 기업형으로 이뤄진다. 래핑카 업주 이모 씨(73)는 경기 고양시 일산에 차고지를 두고 차량 전체를 광고로 도배한 45인승 대형버스 10대를 아침마다 강남 일대로 보냈다. 어두워지면 광고 효과가 없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행시켰다. 이 버스들은 2, 3대씩 무리지어 다니며 일부러 서행하거나 길가에 멈춰 서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길이 막힐수록 광고 효과가 높아진다.
경찰조사 결과 이 씨는 광고물을 도배한 버스를 운행하는 대가로 광고 브로커로부터 한 달에 대당 350만∼380만 원씩 받아 챙겼다. 차량 10대를 동원했으니 한 달 수입만 3500만∼3800만 원인 셈이다. 이 씨는 뮤지컬, 영화, 신발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광고를 해 왔다. 경찰은 차량에 래핑을 해주는 업체와 불법 광고를 알선한 브로커도 추적하고 있다.
대낮에 불법 래핑카가 있다면 밤에는 트럭을 이용한 유흥업소나 대리운전업체 불법 광고가 성행하고 있다. 차모 씨(46) 등 2명은 8일 밤 대리운전업체를 광고하는 네온사인과 간판을 설치한 1t 트럭 두 대를 이용해 서울 강남 일대에서 불법 광고를 하다가 적발됐다. 경찰은 이들이 차량을 불법 개조해 자동차관리법을 위반했는지 조사하고 밤에 대리운전이나 나이트클럽 광고를 일삼는 불법 개조 트럭을 지속적으로 단속할 방침이다.
강남경찰서 양유열 경장은 “운전자들 모두 자신의 행위가 위법인지 몰랐다고 진술할 만큼 불법 옥외광고에 대한 의식이 미비하다”라며 “밤낮으로 무리지어 다니며 교통 흐름을 방해하고 다른 차량들을 위협하는 래핑카와 불법 개조 트럭을 보면 적극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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