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甲의 횡포… “CU본사, 폐업도 마음대로 못하게 막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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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운영을 그만두려던 편의점 업주가 본사 측의 과도한 폐점 비용 요구 등에 절망해 자살했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가맹점을 상대로 ‘갑(甲)의 횡포’를 부리는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편의점 문을 닫는 것조차 어렵게 만드는 행태는 충격적이다.

16일 오후 6시 반 경기 용인시 기흥구 흥덕지구의 CU 편의점 업주 김모 씨(53)가 본사 직원과 폐점에 관해 상의하던 중 수면유도제 40알을 먹고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김 씨는 위세척을 했지만 다음 날 오전 10시 반경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김 씨는 평소 심근경색으로 아주대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약을 복용 중이었다. 병원 측은 “다량의 수면유도제가 심장에 영향을 줘 쇼크사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수면유도제를 먹기 전 CU 본사의 정모 팀장과 점포 주변에서 저녁을 먹으며 폐점 문제를 협의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김 씨는 격분해 바로 옆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구입해 먹었다. 김 씨의 부인 이모 씨는 “남편이 극도로 흥분해 있다는 정 씨의 전화를 받고 통화해 보니 남편이 ‘CU 측과는 도저히 얘기가 안 된다. 너무 화가 나서 안정제를 사러 왔다’고 해 그런 줄 알았을 뿐 자살을 기도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김 씨는 8일 계약을 중도 해지하고 폐점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본사에 보낸 상태였다. CU 측은 “23일까지 폐점 처리할 테니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김 씨가 밖으로 나가 약을 먹었고 특별히 김 씨가 화날 만한 계기는 잘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CU 측은 “8일 해약 의사를 밝혔는데 23일 폐점 처리해 주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폐점 비용(위약금과 인테리어 감가상각비 등)도 1400만 원만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족은 본사가 당초 폐점 비용을 1억 원이나 불렀고, 평소 편의점 운영에서도 노예와 같은 계약 조건이 자살의 배경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씨가 편의점을 인수한 것은 지난해 7월로 투자금은 계약금 700만 원과 물품인도금 3070만 원 등 3770만 원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24시간 영업을 하는 조건이었다. 김 씨는 아르바이트생을 쓰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할 때도 많아 하루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18시간까지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매상은 별로 오르지 않았고, 심장 질환을 앓는 김 씨에게 장시간 근로는 큰 부담이 됐다. CU에서 월 120만 원의 장려금을 받아 간신히 적자를 면할 정도였다. 숨진 김 씨의 부인 이 씨는 “집안에 제사가 있어 남편이 2시간 동안 가게 문을 닫았더니 곧바로 ‘왜 문을 닫느냐, 계약 위반이다’며 채근하는 전화가 걸려 왔고, 이런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며 “편의점 업주는 개인사업자도, 대기업 직원도 아닌, 개인 사생활이 없는 노예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지난해 말 그만두려고 결심했다. 부인 이 씨는 “당시 CU 측에 해약 위약금을 확인해 보니 1억 원이 넘는 금액이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영업을 계속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올 4월 위약금 산정 기준이 완화됐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고는 다시 위약금을 확인했더니 금액은 낮아졌지만, 해약에는 2개월이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던 김 씨는 이 문제를 두고 본사와 여러 차례 옥신각신하다가 내용증명을 보냈고, 당초 예상보다 빠른 23일 폐업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끝내 목숨을 버렸다.

CU 측은 김 씨가 숨지자 유족에 △3770만 원 전액 반환 △위약금 1400만 원 면제 △위로금 월 300만 원씩 1년 치 3600만 원 지급 △장례비 전액을 지급해 줄 테니 ‘언론에 노출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CU 측은 “김 씨의 일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위약금이 1억 원이 넘는다거나 폐점을 일부러 미뤘다거나 한 사실은 전혀 없다”며 “24시간 영업은 선진국이나 국내 다른 점포나 다 마찬가지 조건”이라고 말했다.

김 씨처럼 편의점 운영과 폐점 과정에서 마찰을 빚는 것은 편의점 본사의 과다한 요구와 부당한 계약 때문이라는 것이 편의점 점주들의 얘기다.

CU 본사와 다투다가 거의 강제로 가맹 계약 해지를 당한 K 씨의 경우 계약 해지 사유가 K 씨에게 있다며 위약금 3700만 원과 인테리어비, 철거비, 폐점 수수료, 재고 조사 비용, 회계장부상 마이너스 돼 있는 금액 등 6000만 원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K 씨는 “편의점을 중간에 폐점하면 내야 하는 돈이 위약금을 포함해 7개로 보통 5000만∼1억 원이나 되기 때문에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며 “영업이 안 돼 그만두면 인테리어 비용 정도만 물고 그만두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폐점 비용 때문에라도 장사를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위약금의 경우 폐점 12개월 전부터 1년간 냈던 가맹 수수료(매출이익의 35%)와 같은 액수를 한꺼번에 내도록 해 한 달에 기껏해야 200만∼300만 원을 버는 편의점주에겐 1년 수익을 모두 토해 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편의점 점주들은 본사의 밀어내기 강매나 상품 진열 방식 간섭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강남권의 한 CU 점주는 “최근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6개 발주했는데 12개를 갖고 왔기에 본사에 항의했더니 ‘해당 점에서 발주했으니까 간 것’이라고 하더라. 혹시 착각했나 싶어 확인해 보니 역시 6개 발주한 게 맞았다”고 말했다. 이 점주는 “CU 브랜드로 나오는 PB상품 발주를 강요하기도 하고 특정 브랜드 맥주를 판매에 유리하도록 진열 냉장고 손잡이 앞에 두라고 하는 등 진열에도 사사건건 간섭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편의점 본사가 점포의 영업권 보호를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점포를 늘려 가면서 개별 점주의 매출이 해마다 줄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전국 1만7000여 개 편의점의 점포당 매출을 조사해 보니 매출이 감소한 점포는 42.9%였고 증가한 점포는 4.5%에 그쳤다.

CU는 과거 ‘패밀리마트’에서 지난해 브랜드 이름을 바꾼 편의점 체인이다.

용인=남경현 기자·조동주·곽도영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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