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 남자친구 취업 도우려 혼인신고했다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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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취소소송, 1심 “결혼 유효” → 2심 “무효”

서울의 한 상위권 대학 입학동기인 A 씨(37·여)와 B 씨(36)는 남녀의 벽을 넘어 순수한 친구로서 우정을 쌓아갔다. 2006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무렵 두 사람은 집값을 아끼려고 공동으로 아파트를 얻어 동거하기 시작했다. 연인관계가 아닌 터라 여자의 여동생도 함께 살았다. A, B 씨 사이엔 육체관계도 없었다. 이들은 3년 가까이 여러 곳으로 이사 다니면서도 함께 살며 같은 곳에 주민등록을 뒀다.

2009년경 남자가 취업에 성공해 둘의 계약 동거는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이들의 협력관계는 동거에서 그치지 않았다. 남자는 회사 정식 입사를 1주일가량 앞두고 참가한 연수에서 회사 임원으로부터 “주민등록상 함께 살고 있는 여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임원은 직장인으로서의 품위와 명예를 거론하며 ‘정식 입사일 전까지 관계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으면 입사에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고 암시했다.

남자는 취업에 실패할까 봐 여자에게 “서류상으로만 혼인 신고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여자는 자신 때문에 친구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고 걱정하다 남자가 회사에 출근하기로 한 날 관할 자치구에 혼인 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뒤늦게 후회한 여자는 법원에 혼인 무효 청구소송을 냈다. 1심은 “비록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는 하나 사회 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 육체적 결합(이 이뤄질 가능성)에 관해 서로 합의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가짜 결혼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결과가 뒤집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는 최근 “참다운 부부관계를 설정하려는 의사 없이 단지 취업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 혼인신고 한 것으로 보인다”며 혼인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혼인신고#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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