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2부]<7> 레이싱 벌이는 광역버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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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 승객 있어도 시속 100km… 광역버스 출퇴근 목숨 건다

[시동 꺼! 반칙운전] 레이싱 벌이는 광역버스
12일 오후 11시 반. 서울 광화문에서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를 잇는 1000번 광역버스의 ‘질주 본능’이 눈뜰 시간이다. 오후부터 내린 빗방울에 도로는 젖어 있었지만 운전사는 개의치 않았다. 버스는 승객 10여 명을 태우고 일직선으로 뚫린 서울 서대문구 수색로부터 고양시 중앙로까지 8km 구간을 질주했다.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이 뒤섞여 보행자 통행량이 많은 이곳의 제한속도는 60km. 자동차전용도로도 아닌 일반도로에서 1000번 버스는 85km까지 속도를 높였다. 2011년 이곳 수색로에서만 과속 버스에 5명이 목숨을 잃었다.


13일 0시 반 서울 영등포우체국에서 일산으로 가는 830번 버스도 양화대교를 지나 강변북로로 접어들자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제한속도 80km는 진작 넘었다. 제한속도 90km인 자유로로 접어들자 시속 92km, 93km…. 기자가 손에 든 내비게이션에는 ‘시속 97km’라는 글자가 찍혔고 승용차를 쉽게 추월했다. 자유로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로 접어들 때 버스는 급히 속도를 줄였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로를 바꾸다 옆 승용차와 부딪칠 뻔한 탓이다. 서 있던 승객 3명이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앉아 있던 승객들의 몸도 한쪽으로 쏠렸다. 버스운전사는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길게 울린 뒤 다시 속도를 90km까지 높였다.

○ 제한속도 20km 초과는 기본

동아일보 취재팀과 교통안전공단은 수도권 운수업체 중 최근 3개월 동안 과속 횟수 최상위권을 차지한 운수업체 2곳의 광역버스 7개 노선버스를 2월 15일부터 3월 12일까지 한 달 동안 20여 차례 반복해 승차하며 반칙운전 행태를 점검했다. 시간대는 오후 11시∼오전 1시 사이였다. 모두 일산 수원 파주 인천 등에서 서울로 오가는 광역·좌석버스로 이용객이 많다. 또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 14일까지 5개월여간의 디지털운행기록계 기록을 분석했다. 디지털운행기록계는 버스의 운행속도 브레이크 및 가속페달 사용 운전시간 등 운전사의 운행정보를 자동으로 기록하는 기계다.

취재팀이 직접 승차한 버스들은 모두 승객 수십 명을 태운 채 도로를 질주하는 시한폭탄과 마찬가지였다. 수색로 반포로 등 아파트와 학교가 밀집해 유동인구가 많은 주거 지역에서도 시속 80km를 넘을 때가 있었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자유로 의왕나들목 등 자동차전용도로에서는 지그재그로 차로를 바꾸며 속도를 높였다.

영등포∼파주를 왕복하는 1500번 광역버스는 제한속도가 60km인 고양시 대화역 부근에서 80km를 넘나들며 과속을 일삼았다. 수원과 강남·양재를 잇는 3007번 7000번 7001번 광역버스도 도심을 빠져나가기 무섭게 속도를 올렸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자유로나들목과 과천봉담고속도로의 의왕나들목 등 자동차전용도로 외에 제한속도가 시속 60km인 도심 지역에서도 버스는 상습적으로 빠르게 달렸다. 3007번 버스 이용객 이모 씨(41)는 “버스의 난폭운전이 너무 심하다. 마치 흉기로 위협을 당하는 듯한 불안감에 화가 나 운수업체에 전화할 생각도 했다”고 했다. 일부 광역버스에는 일정 속도를 넘을 경우 과속 주의를 당부하는 경고음이 나오는 장치가 되어 있지만 상당수 버스는 이런 장치 없이 운행되고 있다.

디지털운행기록계를 분석한 결과 이들 노선을 운행하는 A, B업체 2곳의 버스는 운행거리 10km마다 평균 12.6차례 과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속 횟수는 제한속도보다 시속 20km 이상 높은 속도로 달리는 경우 1초마다 1건으로 계산된다. 광역버스의 왕복노선 거리가 평균 50여 km인 점을 감안하면 1회 운행마다 평균 62차례 과속을 하는 셈이다. 서울에서 일산 수원 파주 등을 잇는 광역·좌석버스가 대부분인 A, B운수회사가 2011∼2012년에 낸 사고만 94건으로 4명이 죽고 201명이 다쳤다.

○ 시속 10km로 달리다 충돌해도 아찔한데…

취재팀은 버스가 급제동할 때 승객이 받는 충격을 알아보기 위해 7일 경북 상주시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센터를 찾아 직접 실험했다. 시속은 불과 10km.

교통안전공단 교육개발처 하승우 교수는 “안전띠를 하고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고 당부했다. 서행 중이었지만 급브레이크가 걸린 순간 좌석에 앉아 있던 기자는 앞좌석에 머리를 부딪칠 정도로 강한 충격이 전달됐다. 하 교수는 “시속 100km로 충돌하면 승객이 중상을 입을 확률이 99.9%다. 시속 48km로 충돌했을 때보다 중상 가능성이 9배나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경기 안산시 팔곡동 수인산업도로에선 김모 씨(50)가 몰던 707번 시내좌석버스가 전복됐다. 승객 40여 명을 태운 채 제한속도를 시속 30km나 넘긴 110km로 운전한 탓이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2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커브 구간에서 중심을 잃은 것이 원인이었다. 이처럼 버스는 한 번의 사고만으로 2명 이상 죽거나 6명 이상이 중상을 입는 ‘중대교통사고’를 매년 40여 건씩 발생시킨다.

전체 버스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8000여 건. 매년 3만여 건 발생하는 택시 교통사고 건수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사망자 수는 별반 차이가 없다. 2010년의 경우 버스 교통사고는 8300여 건, 택시 교통사고는 그 3배가 넘는 2만8000여 건이었지만 사망자는 버스 사고가 더 많았다.

○ 목숨 담보로 한 고속도로 서서 가기

서서 가는 승객이 많은 것도 문제다. 일반 승용차가 시속 100km로 달리다 충돌할 경우 탑승자는 13층 높이(39.3m)에서 맨몸으로 낙하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 같은 조건에서 버스에 서 있는 승객이 받는 충격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더 커진다. 버스가 25km로 주행하다 옆으로 넘어졌을 때 서 있는 승객은 안전띠를 매고 앉아 있는 승객보다 중상 입을 확률이 18배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차 밖으로 튕겨 나가면 사망 가능성이 16.8%로, 차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는 경우의 사망률(0.7%)보다 24배나 높았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도로교통법상 자동차전용도로를 운행하는 광역버스가 승차 정원을 어길 경우 운전사에게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규정했지만 취재팀이 출퇴근 시간대 광역버스 탑승 실태를 취재한 결과 대부분의 버스가 입석 승객을 태운 채 고속도로 등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시속 90km를 넘나드는 곡예운전을 했다. 이런 문제는 10여 년째 제기되고 있지만 ‘출퇴근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고쳐지지 않고 있다.

버스 과속은 보행자에게도 큰 위협이다. 2011년 버스에 치여 사망한 보행자는 117명. 회사원 정모 씨는 “중앙차로 정류장에 서 있을 때 광역버스가 과속으로 지나가면 아찔하다”며 “언젠가 정류장을 덮치는 대형 참사가 나야 과속을 단속할 거냐”고 목청을 높였다.


버스운전사들은 “출퇴근 시간엔 과속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빨리 달리라고 재촉하는 손님이 많고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1000번 버스운전사 A 씨는 “비슷한 노선을 운행하는 다른 운수업체의 버스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라 ‘우리 버스만 느리게 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서동일·조건희 기자 dong@donga.com
#광역버스#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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