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앙심에 방화…버스 차고지 방화 전모 드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내비 칩’ 제거…불에 그슬린 손등 위 솜털로 덜미

“나는 안 질렀어요, 불. 그런 적 없어요.”

1월 26일 오전 10시 5분경 서울 강서구 강서경찰서 로비. 1월 15일 강서구 외발산동 영인운수 차고지에서 시내버스 38대를 태운 방화사건 피의자로 체포된 전직 버스 운전사 황모 씨(45)는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 앞에서 단호하게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체포되기 전에 방송사와 전화 인터뷰를 하고 경찰이 집을 압수수색할 때 옆에서 컴퓨터로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볼 정도로 당당했다. 하지만 체포된 지 24시간도 안 돼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화재 발생 약 3시간 반 전 황 씨의 집 근처에서 촬영된 폐쇄회로(CC)TV 화면을 제시했다. 검은색 점퍼 차림으로 마티즈 차량을 몰고 나가는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범행 시간 차고지가 있는 골목길로 그 차가 드나든 장면도 있었다. 황 씨의 차도 마티즈다. 그때까지도 황 씨는 당당했다. “검은색 점퍼가 없다”며 부인하자 경찰은 복원한 황 씨의 휴대전화 사진을 내밀었다. 황 씨가 범행 후 삭제했던 사진 속에는 똑같은 점퍼를 입은 황 씨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여러 정황이 맞아떨어지자 이내 진술이 변했다.

“사실 차고지에 가긴 갔었는데요, 차를 주차해 놓고 회사를 바라보면서 언젠가 꼭 복직해야겠다고 다짐만 하고 돌아왔어요.”

경찰은 또 다른 증거로 압박했다. 1월 19일 실시한 신체검증에서 황 씨의 오른손 손등의 솜털이 불에 의해 변형됐다는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의 감정 결과가 나온 것. 당황한 황 씨는 “오리고기를 먹다가 가스불에 그슬렸다”고 둘러댔다. 그의 컴퓨터 기록을 복원한 결과 ‘숭례문 방화범 처벌’을 검색한 흔적이 나왔다.

지난해 6월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사고로 해고 통지를 받은 황 씨는 완전범죄를 꿈꾼 듯했다. 범행 직후 차량 내비게이션 메모리칩을 제거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초기화시켰다. 차량과 집 안을 청소했다. 하지만 영상 및 압수물 분석, 현장 정밀감식, 통신 장비 등 과학수사를 총동원한 경찰의 추궁을 받은 지 하루 만에 범행을 시인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4일 황 씨를 일반자동차방화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강서구#차고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